하지만 2008년 터닝포인트가 찾아왔다. 인신매매 조직에 납치당한 딸을 구하려고 사투를 벌이는 전직 특수요원으로 분한 ‘테이큰’이 성공을 거두면서 블록버스터 액션영화 캐스팅 1순위로 떠오른 것. 부드러운 이미지와 강렬한 액션을 소화할 수 있는 중년 캐릭터란 희소성 덕이다. 올해에만 ‘더 그레이’ 외에도 ‘다크나이트 라이즈’ ‘배틀십’ ‘테이큰2’ ‘타이탄의 분노’ 등 블록버스터 화제작들이 줄지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더 그레이’의 문제점은 조연들의 캐릭터 세공에 품을 들이지 않았다는 데 있다. 탈게트 역의 더모트 멀로니, 헨드릭 역의 댈러스 로버츠, 디아즈 역의 프랭크 그릴로 등은 극장을 나서는 순간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밋밋했다. 조난 영화일수록 극한상황에서 인물 군상이 빚는 이기심과 갈등이 긴장감을 불어넣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못내 아쉬운 대목이다.
영화 초반 디아즈가 사사건건 오트웨이에게 시비를 걸지만, 어느 순간 조용히(?) 정리된다. ‘미다스의 손’ 리들리 스콧과 토니 스콧 형제가 제작자로 나선 점을 감안하면 더 아쉽다. 2003년 디트로이트 마약수사대를 실감나게 묘사한 ‘나크’로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후보에 오르면서 화려하게 데뷔했던 조 카나한은 ‘스모킹에이스’(2007), ‘A특공대’(2010)에 이어 또 한 편의 범작을 내놓았다.
북미에서는 지난달 27일 개봉, ‘언더월드 어웨이크닝’을 끌어내리고 박스오피스 1위로 데뷔했다. 하지만 개봉 2주 차인 지난 3~5일에는 ‘크로니클’ ‘우먼인블랙’에 밀려 3위. 제작비 2500만 달러는 회수했으니 ‘치고 빠지기’는 성공한 셈이다.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닷컴은 이 영화의 신선도를 77%로 평가했다. 16일 개봉.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