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고 ‘언제 철들래?’ 하던 공대동기들, TV보고 ‘헉’했대요.”

2012년 봄, 배우 이희준(33)이 사람들 가슴에 저벅저벅 걸어들어왔다. 깎아놓은 조각미남도, 야성적인 터프가이도 아닌 그의 묘한 매력을 한 글자로 표현하면 ‘마성남’쯤 될까. 국민드라마 KBS2’넝쿨째 굴러온 당신’(이하 넝굴당)에 출연하기 전만해도 그는 연극판에서 알아주는 배우에 불과했다. 하지만 드라마 초반을 넘어서자마자 올해 ‘최고의 발견’으로 손꼽히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희준
’넝굴당’이 종영한지 2주, 6개월여 동고동락한 배우, 스태프들과 사이판 여행을 마치고 온 그는 까맣게 타있었다. 허물이 벗겨지고 있어 등이 따갑다고 했다. 아직도 옆짚총각처럼 마냥 털털한, 이 남자의 매력을 소개한다.

몸둘바를 모르겠다고 했다. ‘넝굴당’에 출연하면서 그의 주변은 광속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버스며 전철을 타고 다니는 그를 보며 사람들은 “이희준이다!”라며 너도 나도 알은체를 한다. “잘 즐기면 저도 좋겠는데요. 아직도 지나가다 ‘어머!’하는 소리가 들리면 부끄러워서 막 피해요. 하하. 익숙해지지가 않아요.”

6개월전만해도 배우 이희준의 일상은 민간인에 가까웠다. 아동극으로 데뷔해 배고픈 연극배우로 대학로 무대를 누빈지 10년. 그의 인생이 바뀐건 KBS 드라마국 함영훈PD 덕분이었다. 2010년 극단 차이무 소속으로 연극 ‘비연소’를 공연하던 당시, 공연을 보러온 함PD가 다짜고짜 그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PD님이 ‘공연 잘 봤어요’하시더니 바로 ‘단막극 몇개 할래요?’하시는거에요. 얼떨결에 ‘4개?’ 이랬는데, 말한대로 진짜 4편을 했어요. 하하.”

함PD에서 시작된 인연은 다시 ‘넝굴당’ 김형석PD로 이어졌다. 김PD는 지난해 7월 ‘드라마스페셜-큐피드 팩토리’로 그와 첫 인연을 맺은 뒤 ‘넝굴당’에 그를 추천했다.

”천재용이 너무 좋은 역이라 제가 해도 되나 망설였는데, 박지은 작가가 ‘큐피드~’를 보셨더라구요. 오히려 적극 추천하셨어요. 감사하죠.” 책상거울 앞에 앉아 연기연습하던 그의 땀이 비로소 결실을 거둔 순간이었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경상도 사나이 이희준이 처음부터 연기자를 꿈꾼 건 아니다. 대구 영남대 화공학과 2학년 무렵, 우연히 빠진 연극이 미치도록 그를 끌어당겼다. 대구의 한 극단에 소속돼, 현대 연극의 거장 스타니 슬랍스키에 대한 연심을 불태우는 그를 친구들은 외계인 보듯했다. “친구들한테 ‘임마, 니 언제 철들래?’ 소리 많이 들었죠. 1학년때 술먹고 놀던 애들도 도서관에 박혀서 하나둘 토익, 토플 공부 시작할 때, 저만 연극에 미쳤으니까요.”

뜻없던 공대 생활은 2학년을 끝으로 마무리했다. 늦은 나이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 배우의 꿈을 키웠다. 서울 성북구 정릉동, 햇볕 한줌 들지않는 반지하방에서 오직 연극이라는 양식을 먹으며 살던 나날이다.

한예종 졸업생들이 만든 극단 ‘간다’와 기라성같은 연기파를 배출한 극단 ‘차이무’가 그를 기른 요람이다. MBC’골든타임’의 이성민, 정석용, 영화 ‘부러진 화살’의 박원상이 모두 차이무 출신. “그런 선배들과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꿈과 같은 시절이었어요. 연기부터 태도까지 나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거기서 배웠어요.”

이희준의 연인으로 유명세를 치른 노수산나도 바로 차이무 소속이다. “좋은 배우고, 잘 만나고 있어요. 솔직히 말하면 잠잠해질까 싶어서 얘기했는데, 더 화제가 되는 것같아서 요즘은 말하기가 조심스러워요.”

’넝굴당’을 하며 CF를 4편 찍었다. 이사도 했다. 햇볕 잘 들고 새소리도 들리는, 북악산 아래 종로구 평창동이다. 등산 좋아하는 그에겐 더할나위 없는 집이다.

”등산을 좋아해서 평소에도 등산복을 즐겨입어요. 등산 못가도 등산하는 마음이 들어서. 하하. 집앞에서 등산로가 가까워서 자주 혼자 올라요.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무대에 오르기 때문에 더더욱 혼자있는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마음이 정말 복잡할 때는 지리산에 가요. 2박3일 종주하면서 숲의 고요함에 잠기는 그 느낌이 참 좋아요.”

2남 중 장남으로 부모는 고향인 대구 서구 송현동에 살고있다. 연년생 남동생은 삼성에 다니고 있다. “올 추석에는 사인 하느라 팔 좀 아프겠다”고 했더니, “안그래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있다”며 웃었다.

여전히 유명세가 낯설지만, 연극배우라는 뿌리를 잘 지켜가는 배우가 되고싶다고 했다.

”그런 생각은 했어요. 내가 더 유명해지면, 연극 공연에 도움이 되겠지 하고. 이번에 극단에서 4개 공연을 시작했는데, 사회를 부탁하셨어요. 원래 그런거 정말 못하는데, ‘당연히 해야죠’하면서 했어요. 사회보며 버벅버벅 했지만, 너무 기분 좋았어요. 지금 ‘거기’라는 공연도 하고있는데, 많이 봐주세요.”

박효실기자 gag11@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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