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듯 애틋한 가족이란 그런 것

외딴 섬에 살고 있는 노부부가 도쿄에 있는 자식들을 보기 위해 찾아온다. 장성한 자식들은 부모와 저녁을 먹는다며 한껏 부산을 떤다. 하지만 자식들이 부모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딱 거기까지. 병원을 운영하는 큰아들과 미용실을 운영하는 큰딸은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 모시기를 꺼리고, 비싼 호텔에서 묵게 한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나마 부부를 살갑게 대하는 건 철없는 막내아들의 애인. 아버지는 쓸쓸한 마음을 술로 달래고, 어머니는 막내아들의 좁은 집에서 잠을 청하며 웃음을 되찾는다.

구로사와 아키라, 미조구치 겐지와 함께 일본 영화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오즈 야스지로(1903~1963) 감독의 대표작 ‘동경 이야기’(1953)가 일본의 또 다른 거장 야마다 요지(82) 감독의 손을 거쳐 ‘동경가족’으로 다시 돌아왔다. 야마다 감독은 자신의 데뷔 50주년을 기념해 오즈 감독에게 헌사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는 파편화된 가족의 풍경을 담담하면서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부모를 사랑하면서도 부모를 위해 불편함은 절대 감수하지 않으려는 자식들, 애석한 마음을 꾹꾹 눌러 참는 노부모의 모습은 우리네 가족과도 닮아 가슴 한편을 무겁게 만든다. 생과 사가 가족을 가르지만 영화는 슬픔과 회한의 감정을 분출하지 않는다. 대신 죽음을 마주하는 가족들의 각기 다른 표정을 통해 삶과 죽음, 가족의 의미를 찬찬히 되돌아보게 만든다.

전후 일본 사회를 묘사했던 원작은 ‘동경가족’에서 동일본 대지진 후의 일본 사회로 배경을 옮겼다. 2011년 4월 1일 크랭크인할 예정이었던 작품은 동일본 대지진으로 작업이 중단됐고 감독은 지진 후 일본 사회를 배경으로 각본을 수정했다. 영화에는 가슴속 불안감을 꾹꾹 누른 채 일상을 마주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이 엿보인다. 하지만 걷잡을 수 없는 무력감을 안겼던 지진 속에서도 애써 희망을 찾으려 한다. 아버지의 지인은 지진으로 가족을 잃지만, 막내아들은 지진 현장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인연을 만난다. 그리고 그 인연이 파편화되는 가족을 잇는 끈이 된다.

일본의 대표적인 배우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은 이 영화의 숨은 매력이다. 아버지 역할의 하시즈메 이사오, 어머니 역할의 요시유키 가즈코 등 원로 배우들과 막내아들 쇼지 역의 쓰마부키 사토시, 애인 노리코 역의 아오이 유우 등 청춘스타들의 앙상블이 눈을 즐겁게 한다. 31일 개봉. 전체 관람가.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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