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에게 방아쇠 당긴 ‘플래툰’ 반즈 중사처럼
데이비드 섀럿(왼쪽) 일병 부자
이 영화를 연상시키는 사건이 실제 이라크전에서 있었던 것으로 27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2008년 1월 16일 이라크의 소도시 발라드.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 미 보병 101사단 소속 6소대 대원 8명이 블랙호크 헬기에 올랐다. 티머시 핸슨 중위가 지휘한 이날 작전에는 데이비드 섀럿(27) 일병도 참여했다. 오전 5시쯤 무장하지 않은 이라크 반군 6명이 평지의 작은 덤불에 들어가는 모습이 상공에서 포착됐다. 5시 15분 헬기에서 내린 대원들이 덤불을 에워쌌다. 그리고 “손들고 항복하라.”고 외쳤다. 그 순간 덤불에서 무차별적으로 총탄이 쏟아져 나왔다. 덤불 앞쪽에서 무방비 상태로 있던 대니 키미 일병 등 2명이 쓰러졌고 순식간에 교전이 벌어졌다.
5시 20분 덤불 왼쪽에 있던 섀럿이 앞쪽으로 이동하면서 덤불에 총격을 가했다. 곧이어 그는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섀럿이 쓰러진 자리 근처에서 누군가 일어나더니 덤불 반대 방향으로 달아났다. 핸슨이었다. 한 군데도 다치지 않은 그는 대기 중이던 헬기에 제일 먼저 올랐다. 총을 맞은 섀럿이 고통스러워하며 땅을 뒹구는 모습이 이륙한 헬기 조명에 얼핏 잡혔지만 헬기는 핸슨과 부상자 2명만을 태운 채 병원으로 향했다.
버지니아주에 사는 섀럿의 아버지 데이브(57)는 군 당국으로부터 섀럿이 지휘관의 의도하지 않은 오발 사고로 숨졌다는 통보를 받는다. 섀럿은 총을 맞은 뒤 75분간이나 숨이 붙어 있었지만 너무 어두워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2009년 2월 섀럿의 1주기 추도식이 있던 날 밤 데이브의 숙소를 아들의 전우들이 방문하면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다. 그들은 사건 당일 무인항공기 등에서 현장을 촬영한 비디오 자료 등을 내놓으며 “당국이 사건을 은폐하고 거짓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화면에서는 바닥에 쓰러진 섀럿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010년에 나온 최종 부검자료는 불과 1.8m 거리에서 섀럿이 핸슨의 총에 맞은 것으로 결론지었다. 핸슨은 또 그날 밤 아군끼리 식별할 수 있는 적외선 장비를 켜라는 지시를 부하들에게 내리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핸슨은 끝내 덤불 쪽으로 총을 쏜 기억밖에 없다고 진술했고 사건 후 오히려 진급까지 했지만 데이브의 탄원으로 결국 군복을 벗었다.
아들의 사인 규명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데이브는 최근 유품을 정리하다 아들이 사망하기 며칠 전 쓴 일기를 발견했다. “우리는 지금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다. 군대를 나가고 싶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2012-02-2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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