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끝나도…돌아오지 않는 이집트의 아들딸

혁명 끝나도…돌아오지 않는 이집트의 아들딸

입력 2012-09-07 00:00
업데이트 2012-09-07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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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기간 석연찮은 실종…활동가 “불법구금ㆍ학대 정황”

“무바라크가 물러나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어요.”

혁명이 한창이던 지난해 1월25일 이집트 카이로. 사바 압델 파타(47)의 아들 모하메드 사디크는 이 한 마디를 남기고 아파트를 나섰다.

18일 뒤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은 막을 내렸지만, 시위대 속으로 떠났던 파타의 25세 아들은 그 길로 18개월째 어머니에게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7일 미국 워싱턴포스트(WP) 보도에 따르면 사디크를 비롯해 이집트 혁명 기간에 거리에서 진압경찰과 싸웠던 숱한 이들이 석연치 않게 행방을 감췄다.

아들이 집을 떠나고 며칠 뒤부터 파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시신 안치소와 교도소 문턱을 밟았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숨을 참고 시신 덮개를 열어보기가 수십 번이었고, 응답 없는 아들의 휴대전화 번호로 필사적인 전화를 걸었지만 허사였다.

열심히 공부해 국제무역 학위를 받았지만 변변한 직장을 찾지 못해 허드렛일을 했던 아들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 현실에 속을 태웠다. 그가 반정부 시위의 최전선에 서게 된 이유다.

무바라크가 전격 사퇴한 지난해 2월11일, 드디어 사디크로부터 한 통의 문자메시지가 조카의 휴대전화로 날아들었다.

아들이 보안당국에 의해 구금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전화는 이내 끊겼고, 다시 연락이 닿았을 때 전화를 받은 것은 경찰관이었다고 파타는 말했다.

이후 이어진 군부의 과도정부 기간 파타는 이집트 전역을 다녔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아들은 여기 없다. 도움을 줄 수 없다” 뿐이었다.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 끝이 보이지 않는 여정에 나선 것은 그녀 만이 아니다.

실종자 가족을 지원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추적 중인 사례가 60건 가량 된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수치는 혁명과 과도정부 기간에 발생한 전체 실종자 가운데 일부분일 뿐이라고 이들은 보고 있다.

‘그들을 찾으리라’라는 이름의 캠페인을 올해 초 시작한 네르민 유스리 활동가는 “안치소에도, 병원에도, 감옥에도 없는 사람들이 있다”며 “하늘로 증발하지는 않았을 테고, 그럼 뭔가가 분명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실종자 가족이 발견한 사실 가운데에는 당국이 불법 구금과 학대를 통해 저항세력을 무릎꿇리려 했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정황도 있다고 활동가들은 주장했다.

기자 지구 피라미드 근처에 사는 사이드 마흐무드(54)도 실종된 연년생 아들과 딸을 찾아다니다 반정부 투사가 됐다.

18세 아들 아므르 사이드는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해 1월28일 사라졌다가 6개월 뒤인 7월17일 이집트 북부의 한 교도소에서 풀려났다.

갇혀 있는 동안 어떤 일을 당했냐고 캐묻는 아버지에게 그는 텅 빈 눈을 하고 “성폭행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그리고는 이내 다시 집을 나갔다.

”싸워서 내 손으로 복수를 하겠다”는 것이 아들의 마지막 말이었다.

학습장애가 있던 17세 딸 사마마저 마흐무드와 함께 시위를 하러 나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사라져버렸다.

자신을 도와주겠다며 나선 경찰과 검찰들은 종종 부끄러운 표정으로 ‘실종자들에 대해서는 함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털어놓곤 했다고 마흐무드는 말했다.

더이상 찾아갈 병원도 안치소도 남아있지 않다는 그는 “그냥 하염없이 길을 걷는다. 버스를 타면 도시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가면서 창밖의 사람들을 보며 아이들을 찾는다”고 토로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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