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중국에 대한 모욕”, 접견 여부·시기 주목
지난 3월 평양에 부임한 리진쥔(李進軍) 신임 주북한 중국대사가 3개월 가까이 활발한 행보를 펼치고 있음에도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아직 만나지 못하고 있다.20일 주북 중국대사관에 따르면 리 대사는 부임 직후인 지난 3월 30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신임장을 제정한 뒤 북한의 고위급 인사들을 두루 만났다.
리 대사가 만난 고위인사로는 김영남 위원장 외에도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과 리용남 대외경제상, 강하국 보건상, 리길성 외무성 부상 등이 꼽힌다.
리 대사는 부임 후 북중관계의 기본 원칙인 16자방침(전통계승·미래지향·선린우호·협조강화)을 언급하고 ‘순망치한’을 의미하는 ‘순치상의’(唇齒相依·입술과 이처럼 밀접한 관계)란 표현까지 오랜만에 동원하며 북중 관계의 개선 의지를 피력했다.
다만 리 대사는 북중 관계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구동존이’(求同存異·차이점을 인정하면서 같은 점을 추구)란 표현을 사용해 중국이 북한과 정상적인 국가관계를 희망하고 있다는 관측도 낳았다.
그러나 대사관 측이 밝힌 리 대사와의 접견 인사 가운데에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이름은 아직 찾아볼 수 없다.
김 제1위원장이 북한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국가로 꼽히는 중국의 대사를 부임 3개월이 다 돼가도록 만나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여전히 냉랭한 북중 관계의 현주소를 반영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임 류훙차이(劉洪才) 대사는 2010년 3월 초에 부임해 한달도 채 안 돼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과 접견한 뒤 만찬까지 함께 했다.
시사평론가 롼츠산(阮次山)은 최근 홍콩 봉황(鳳凰)위성 TV에 출연, 3개월이 다 돼 가도록 김 제1위원장이 리 대사와 만나지 않고 있는 데 대해 “우리 대사를 당신이 접견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의 모욕”이라고 지적하며 북한이 과거처럼 중국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외교가에서는 현재의 북중 관계에 대해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상대적으로 적극적이지만 북한이 아직은 관계 회복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점을 근거로 과연 김 제1위원장이 리 대사를 언제 접견할지가 앞으로 북중 관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 관측통은 최근 2~3년간 고위급 교류가 단절된 북중 관계가 복원되려면 여러 계기나 신호가 필요하다고 전제하면서 “김 제1위원장이 주북한 대사를 언제 접견해 어떤 메시지를 전할지가 앞으로의 북중 관계가 어떻게 나아갈지를 판단할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