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특파원 블로그] 中, 아무리 日과 관계 험악해도… 외교무대 ‘中→日→韓’ 호명 속내는

[world 특파원 블로그] 中, 아무리 日과 관계 험악해도… 외교무대 ‘中→日→韓’ 호명 속내는

이창구 기자
이창구 기자
입력 2015-11-02 23:08
업데이트 2015-11-02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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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청와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리커창 중국 총리의 공동 기자회견은 동시 통역으로 진행됐다. 그런데 리 총리 통역 때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리 총리는 계속해서 ‘중·일·한 3국’이라고 말하는데 통역사는 고집스럽게 ‘중·한·일 3국’이라고 바꿔서 전달했다. 일부 국내 언론은 통역사의 호명 순서를 리 총리의 실제 발언으로 여기고 중국이 한국을 예우하기 위해 일본보다 앞세웠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중·일 3국이 동시에 참여하는 외교 행사에서 중국의 호명 순서는 예외 없이 ‘중→일→한’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도 리 총리는 물론 중국 외교부, 관영 매체, 경제지, 심지어 해외에 서버를 둔 반중국 매체들도 이 순서를 바꾸지 않았다. 중국과 일본의 관계가 아무리 험악해도 한국이 일본에 앞서 호명된 적은 없다.

사실 이번 3국 정상회의의 공식 명칭은 ‘한·일·중 정상회의’다. 주최국인 한국을 맨 앞에 두고 차기 개최국과 차차기 개최국을 차례로 붙이는 게 관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언론도 공식 순서를 무시하고 습관대로 ‘한·중·일 정상회의’라고 썼다. 호명 순서는 부르는 사람 마음이지만, 일본보다 중국이 중요하다는 의식이 우리 저변에 깔렸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일본 언론도 습관대로 ‘일·중·한 정상회의’로 표기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 서방 언론 대부분은 ‘중·일·한’으로 썼는데, 영국 BBC 기사에서는 ‘일·중·한’으로 돼 있었다. 한국이 ‘말석’인 것은 마찬가지다.

호명 순서가 무슨 상관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중·일 3국의 협력 사업을 위해 4년 전 서울에 설치된 국제기구 명칭이 ‘3국 협력 사무국’이 된 이유가 각 나라가 서로 앞자리를 차지하려고 해 결국 국가명을 붙이지 못했다는 사실을 돌이켜 보면 외교에서 호명 순서는 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베이징 외교가에선 ‘미·중’이 아닌 ‘중·미’가 자연스럽게 나와야 진정한 친중파라는 소리도 있다. ‘중·일·한’ 또는 ‘일·중·한’으로 굳어진 외교 언어에서 가운데 자리를 꿰차는 길은 국력을 역전시키는 방법밖에 없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2015-11-03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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