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달콤한 흑맥주 페이스트리 스타우트의 유혹
양조 재료 10%만 검은보리로 바꿔도 흑맥주 나와
‘흑’이라는 이름과 달리 각양각색 맥주 제조 가능
디저트 맛 나는 ‘노아 피칸머드케이크’가 출발점
새로움에 제한 두지 않는 수제맥주 정신 잘 구현
스웨덴의 수제맥주 양조장 옴니폴로(Omnipollo)가 출시한 ‘노아 피칸 머드 케이크’(Noa Peacan Mud Cake). 세계 크래프트 비어 시장을 이끄는 한 축인 페이스트리 스타우트 맥주의 출발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효준
흑맥주는 우리의 생각보다 종류가 많다. 일반인에게 익숙한 ‘다크 라거’(Dark Lager)나 ‘아이리쉬 드라이 스타우트’(Irish Dry Stout)뿐 아니라 마니아들이 사랑하는 ‘벨지안 다크 에일’(Belgian Dark Ale), ‘블랙 아이피에이’(Black IPA) 등 수를 셀 수 없다.
한 맥주 시음회에서 스태프가 다양한 맥주를 시음하고자 준비하고 있다.
이 스타일은 2010년대에 다양한 부재료를 첨가한 스타우트가 하나 둘 세상에 나오면서 시작됐다. 역사가 길지 않아 아직 명확한 개념이 정립되진 않았다. 업계에서는 스웨덴의 대표 수제맥주 양조장 옴니폴로(Omnipollo)의 창업자이자 브루어 헨녹 펜티가 어릴적 꿈인 파티셰에서 영감을 받아 피칸머드케이크를 맥주로 재해석한 ‘노아 피칸머드케이크’(Noa Peacan Mud Cake)를 선보인 것을 출발점으로 본다. 요즘 말로 하자면 맥주에 ‘덕심’(덕후의 마음)을 담은 것이다. 이후 그에게 영감을 받은 전 세계 양조사들이 ‘디저트 스타우트’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중국 베이징의 유명 양조장 징에이(京A)가 내놓은 페이스트리 스타우트 ‘오레오스 오레오’(Oreo’s Oreo). 오레스 비스킷 맛이 난다.
야수파가 현대 미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듯 페이스트리 스타우트 역시 세계 수제맥주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과자와 케이크, 아이스크림 맛까지 구현하면서 제품의 스팩트럼을 넓혀가고 있다. 수제맥주 시장의 ‘이단아’이자 ‘떠오르는 스타’라는 이미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서울 문래동의 수제맥주 펍 비어바나가 내놓은 페이스트리 스타우트 ‘더블 민초 브라우니’. 민트초코파이 맛이 난다.
맥주에 여러 부재료를 첨가하려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창의와 혁신을 응원하는 수제맥주 세계에서 양조사들은 늘 기존 스타일의 맥주에 물음표를 던지며 새롭고 재미난 맥주를 개발해 왔다. 이렇게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크래프트 비어 정신’이야말로 페이스트리 스타우트 같은 맥주가 세상에 빛을 보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미국 뉴욕의 유명 양조장 아더하프(Other Half Brewing Co.)의 페이스트리 스타우트 ‘바나나버서리’(Bananaversary).
페이스트리 스타우트를 접할 때마다 지금도 이 일화가 머릿 속을 맴돈다. 새로움에 어떤 제한도 두지 않고 과감하게 실험에 나서는 자세야 말로 맥주 뿐 아니라 우리의 인생에도 꼭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한 잔의 페이스트리 스타우트에서 이런 통찰을 맛볼 수 있다면 앞으로의 삶도 의미있고 충만하게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서울 문래동 양조장 비어바나에서 내놓은 페이스트리 스타우트 ‘초코파이 페스츄리 스타우트’. 초코파이 맛이 난다.
지효준은: 1995년생. 중국 베이징대에서 사회학을 공부했다. 맥주의 맛 뒤에 숨겨진 경제와 사회, 문화의 매력을 발견하고 각국을 돌며 ‘세상의 모든 맥주’를 시음·분석·정리하고 있다. ‘글로벌 맥주 플랫폼’을 꿈꾸며 다양한 사업도 준비 중이다. 한국에서 맥주가 ‘폭탄주’ 용도로만 쓰이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크다. 맥주의 진정한 가치를 알리는데 젊음을 건 ‘맥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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