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여성’ 메르켈과 대처, 닮은 듯 다른 꼴

‘철의 여성’ 메르켈과 대처, 닮은 듯 다른 꼴

입력 2013-09-23 00:00
업데이트 2013-09-23 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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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현지시간) 치러진 독일 총선에서 승리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에 견주어 ‘독일판 철(鐵)의 여성’으로 불리고 있다.

두 여성은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각국 최초의 여성 국가지도자 자리에 올랐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또 둘 다 끈기와 결단력으로 권력 쟁취에 성공한 우파 여성 정치인으로 남성보다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했다는 점도 닮았다.

그러나 대처 전 총리가 비타협 강경 노선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라면 메르켈 총리는 통일 독일의 화합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것은 다른 점이다.

시골 작은 교회 목사의 딸인 메르켈 총리는 1990년대 여러 장관직을 거쳐 2000년 4월 보수적인 기독민주당(기민당)의 첫 여성 당수가 됐다.

자신을 ‘정치적 양녀(養女)’로 부를 정도로 끈끈한 관계였던 헬무트 콜 전 총리가 같은 해 비자금 스캔들에 휘말리자 당을 구하려고 공개적으로 콜 전 총리의 정계 은퇴를 요구하는 강인함을 보였다.

메르켈 총리는 2008년 이후 유럽 경제 위기 속에서도 냉정함과 침착함을 잃지 않고 대처하면서 독일뿐 아니라 유럽의 미래를 좌우하는 지도자로 거듭났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위기 중에는 남유럽 국가 재정 지원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보여 그리스나 스페인 등 긴축재정을 압박받는 국가들이 메르켈 총리를 나치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는 메르켈 총리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지를 보여주는 증거로 그녀는 지난해 미국 경제전문잡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명’에서 1위를 차지했다.

지난 4월 숨진 대처 전 총리도 넉넉지 못한 식료품 가게의 딸로 자라나 영국 최초 여성 총리가 됐다.

대처 전 총리는 만성적인 파업과 높은 실업률, 인플레이션, 부진한 경제 성장 등 ‘영국병’을 고치는데 앞장섰다.

민간의 자율적인 경제활동을 중시하는 ‘대처리즘’으로 경제 부흥을 이끌었으며 1982년에는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포클랜드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정치적 역량을 발휘했다.

또 미국과 협력해 냉전을 붕괴시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83년과 1987년 실시된 총선에서 보수당이 연거푸 승리해 3기를 연임함으로써 영국 사상 최장기 집권 총리가 됐으며 전 세계 여성 지도자의 대명사가 됐다.

하지만, 메르켈과 대처는 집권 이후 크게 다른 모습을 보였다.

대처 전 총리가 야당과 노조 등 자신의 반대 세력에 대해 타협 없이 강하게 대응한 반면 메르켈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화합형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7월 미국의 외교 전문 매체인 포린폴리시(FP)는 대처 전 총리를 전통주의적 여성지도자로, 메르켈 총리를 중도주의적 지도자로 분류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구 동독 출신인 메르켈 총리는 통일 독일의 정치적 화합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좌파 등과도 연정을 구성하면서 대처 전 총리와 달리 노조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무절제한 자본주의를 경계하는 ‘따뜻한 보수주의자’로 평가받고 있다.

반면 대처 전 총리는 광산노동자 파업과 아일랜드공화국군(IRA) 수감자 단식투쟁 사건 등에서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강력히 대응했으며 아르헨티나와 포클랜드전쟁도 불사할 정도로 완강한 모습을 보였다.

국외적으로 대처 전 총리는 정통 보수당원으로서 유럽 통합에 강력히 반대했으나 메르켈 총리는 유럽연합(EU)의 의사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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