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공원서 체첸 망명자 칸고슈빌리, 자전거 탄 남자에게 피격

베를린 공원서 체첸 망명자 칸고슈빌리, 자전거 탄 남자에게 피격

임병선 기자
입력 2019-08-28 08:17
수정 2019-08-28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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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러시아 특수부대의 작전에 희생된 체첸 반군 지도자 아슬란 마스카도프와 그를 밀착 보좌하던 젤림칸 칸고슈빌리. 페이스북 캡처
2005년 러시아 특수부대의 작전에 희생된 체첸 반군 지도자 아슬란 마스카도프와 그를 밀착 보좌하던 젤림칸 칸고슈빌리.
페이스북 캡처
독일 베를린의 한 공원에서 자전거를 탄 채로 체첸 망명자를 암살한 러시아 남성이 체포됐다.

독일 경찰은 지난 23일(이하 현지시간) 정오가 되기 얼마 전 베를린 도심 모아빗의 클라이너 티어가르텐 공원에서 오랜 시간 러시아의 제거 타깃으로 지목돼 온 젤림칸 칸고슈빌리(40)를 저격한 직후 49세 러시아 남성을 체포했으며 공격에 사용한 피스톨 권총과 자전거를 발견했다고 영국 BBC가 27일 보도했다. 목격자들은 이 남자가 뒤에서 자전거를 탄 채 칸고슈빌리에 다가와 머리에 총알 두 발을 박은 뒤 속도를 내 달아났다고 입을 모았다.

경찰이 급히 달려와 근처 슈프레 강에 자전거와 권총, 다른 증거를 버리는 모습이 목격된 용의자를 체포하기에 이르렀다. 경찰 잠수부들이 소음기가 달려 있는 글록 26 권총과 자전거를 건져올렸다.

암살 용의자의 이름은 바딤 S라고만 보도됐고, 그의 아파트를 수색해보니 많은 양의 현금을 보관하고 있었다. 모스크바를 떠나 파리를 경유해 며칠 전에 베를린에 도착했고, 모스크바로 돌아갈 비행기 표를 예약해둔 상태였다.

과거에도 해외에 체류하는 반체제 지도자들을 암살하는 데 악명을 떨쳐 온 러시아에 의심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영국에서도 2006년 러시아 국가보안 장교였던 알렉산데르 리트비엔코와 지난해 세르게이 스크리팔이 독살당했다.

칸고슈빌리는 2001~05년 북카프카스에서 러시아 군대와 맞선 2차 체첸전쟁에 참전했다. 체첸의 키스트 커뮤니티 출신으로 조지아의 판키시 협곡 험준한 산악 지형에서 살았다. 2005년 러시아 특수부대의 작전에 살해된 체첸 반군 지도자이자 한때 대통령을 지내기도 했던 아슬란 마스카도프를 밀착 보좌했던 인물이다. 조지아의 라디오 프리 유럽은 칸고슈빌리가 2012년 8월 로포타 협곡에서 조지아 보안군과 인질을 억류한 체첸 무장집단을 중재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러시아군의 제거 리스트에 항상 이름이 올랐고,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에서 총알이 여덟 발이나 발사된 암살 시도에도 부상만 당하고 살아남은 뒤 독일로 달아났다.

현재 체첸은 람잔 카디로프가 통치하고 있는데 그 역시 반군 출신이었으나 지금은 완전히 입장을 바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며 오히려 동지였던 반군 세력을 잔인하게 탄압하고 있다. 잔인한 성정을 지녀 서구 국가들이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근래 몇년 동안 해외에서 체첸의 반체제 인사들이 암살되고 있다.

2005년 이후 카디로프에 반대하는 반군 세력들이 북카프카스를 중심으로 암약하는 가운데 체첸과 다게스탄처럼 러시아군이 점령한 지역 마을들에서는 이슬람 무장전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특히 칸고슈빌리의 고향인 판키시 협곡에 사는 체첸인들은 이슬람국가(IS)에 합류하기도 했다.

칸고슈빌리는 조지아에서 늘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 살아 여러 가지 가명을 사용했다. 독일에서도 가명으로 망명을 신청했지만 아직 승인되지 않은 상태였다. 많은 체첸인들이 독일로 이주해 망명을 신청하지만 승인을 받기는 매우 어렵다고 방송은 전했다. 그 역시 독일 경찰의 의심을 받아 한때 요주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나중에 증거 부족으로 삭제됐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반면 일부 매체에서는 그가 오랫동안 지하 범죄조직과 연계돼 있었다며 정치적 암살이 아니라 보복 범죄에 희생됐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칸고슈빌리는 미망인과 네 자녀를 베를린에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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