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주문진

[영화리뷰] 주문진

입력 2010-01-19 00:00
수정 2010-01-1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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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주문진 인근 숲 속의 한 펜션.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에 문을 닫은 곳이다. 이곳을 제대로 운영해 보겠다고 팔소매를 걷어붙인 사촌 남매가 찾아든다. 하지만 유령이 나올 낌새에 겁 많은 사촌 오빠 영두(조상기)는 혼자 도망가고, 아버지가 물려준 스톱워치를 잃어버린 지니(황보라)는 겁도 없이 펜션에 남는다. 순수하고 호기심 많은 지니가 만나게 된 것은 고스트(김기범). 처음에는 고스트가 유령인줄 알았으나 사랑하던 연인을 잃은 슬픔에 빠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지니는 예기치 않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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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16년 동안의 공백을 깨고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를 발표했던 노() 감독의 최신작이다. 천재 감독으로 평가받는 고(故) 하길종 감독의 동생인 하명중(63) 감독이다. 1970년대 인기 배우였다가 1980년대 들어서며 연출가로 변신한 하 감독은 인기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의 김기범과 ‘뚜껑 소녀’ 황보라를 투톱으로 삼아 젊은 감각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려고 한다. 21세기에 20세기 느낌의 작품을 꺼내놓은 감독은 그러나 관록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영화는 내용적으로 결코 세련되지 못하다. 구조적으로도 매끄럽지가 않다.

무엇보다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감정 흐름의 비약이 심하다. 지니가 고스트에게 연민을 품게 되는 과정과, 끝없이 지니에게 퉁명스럽게 대하던 고스트가 영화 막바지에 지니를 사랑하게 되는 ‘돌변’ 과정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고스트만 하더라도 초반에는 거울을 뚫고 나오고, 달려오는 버스를 그대로 관통하는 등 영락없는 유령의 모습이지만, 결국 사람인 것으로 밝혀지며 관객들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웃음을 유발하는 감초 캐릭터들을 여럿 배치했지만, 영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기 보다 따로 노는 느낌. 뜬금없이 퇴마사(최주봉)가 등장하는 등 일부 장면은 실소를 자아내기도 한다. 영화 전반에 걸쳐 슬랩스틱의 원맨쇼를 보여주는 황보라의 연기는, 보면 볼수록 안쓰럽기까지 하다.

간간이 곁들여지는 주문진의 풍광이 그나마 볼거리이지만 밤 장면과 낮 장면 모두 뿌옇게 비춰지는 색감은 영화 감상을 방해한다. 강원도를 배경으로 나온 역대 영화 가운데 강원도 사투리가 가장 어색하게 들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마음속에 있는 이상적인 사랑을 동화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는 노장의 바람은 그저 바람에 그친다. 김기범과 황보라의 팬이 아니라면 그다지 길지 않은 러닝타임 96분이 지겨울 수 있다. 21일 개봉.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2010-01-19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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