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웨이브 전통음악 그룹 ‘노름마치’ 해외공연 현장

뉴웨이브 전통음악 그룹 ‘노름마치’ 해외공연 현장

입력 2010-04-28 00:00
업데이트 2010-04-28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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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홍지민특파원│“덩~덩~쿵더쿵” 장구(김주홍)가 구음(입소리)을 내며 흔들흔들 앞으로 나선다. “댕~댕” 징(이호원)이 슬쩍 소리를 보태자, 이에 질세라 “두웅~둥” 북(김종명)이 비집고 들어온다. “개갠지개깽” 수줍은 꽹과리(오현주)까지 합쳐졌다. 입으로 하는 장단놀이, 이름하여 트랩(TRap·트래디셔널 랩)이 환상적이다. 서양의 비트박스는 저리 가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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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홍이 구성진 목청으로 판소리 ‘흥부가’의 한 대목을 차지게 쏟아낸다. “흥부가 박을 쩍~하고 열어 보니 궤 두 짝이 있었는데…하나에는 쌀이 가득, 하나에는 돈이 가득…”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은근하게 아니리로 이어지던 소리는 어느 순간 휘모리 장단으로 속사포처럼 몰아친다. “흥부가 좋아라고, 흥부가 좋아라고~”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습기를 머금고 축 늘어졌던 깃발이 숨넘어가게 덩실댄다. ‘노름마치’라는 한글 네 글자가 선명하다. ‘놀다’와 ‘마치다’를 합친 말이다. 절정의 순간에 등장해 최고의 재주를 뽐내며 대미를 장식하는 재주꾼을 의미한다. 1993년 젊은 국악인들이 모여 만든 뉴웨이브 한국 전통음악 그룹이다.

지난 24일 저녁 싱가포르 마리나만(灣). 전날 에스플라나데가 기획한 ‘태피스트리 오브 어 세이크리드 뮤직’(Tapestry of a Sacred Music) 페스티벌 개막무대를 장식한 노름마치가 다시 한 번 무대에 오르자 마리나만의 열기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다인종·다문화 국가답게 야외극장은 다양한 인종 1500여명으로 가득 찼다. “야외극장이 이렇게 인산인해를 이룬 것은 정말 오랜만”이라고 에스플라나데 관계자가 귀띔했다. 길놀이 장단을 치며 객석 뒤에서 등장하는 노름마치를 신기하게 바라보던 관객들은 천둥처럼 몰아치다가도 봄비처럼 잦아드는 소리의 변주(變奏)에 이내 빠져들었다.

서양 아저씨도, 동양 아주머니도 머리를 끄덕끄덕, 어깨를 으쓱으쓱 절로 장단을 맞춘다. 아이들은 폴짝폴짝 뛰어오른다. 피부색, 성별, 나이를 떠나 세계와 소통하는 우리네 신명이 물결쳤다. 노름마치의 시나위가 대단원을 장식하자 관객들은 내남없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노름마치 리더이자 예술감독인 김주홍(39)은 “나라 밖으로 나오면 역설적이게도 우리 소리의 독창성과 깊이, 저력을 절감하게 된다.”며 “국내의 일부 고리타분하다는 선입견이 완전히 불식되는 그날까지 노름마치의 놀이는 계속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글 사진 icarus@seoul.co.kr
2010-04-28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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