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군기자 눈에 비친 한국전쟁의 참상

종군기자 눈에 비친 한국전쟁의 참상

입력 2010-06-21 00:00
업데이트 2010-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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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TV 21~25일 오전 7시

1951년 미국의 퓰리처상은 6명에게 주어졌는데, 수상자는 모두 한국전을 취재한 종군기자들이었다. 드레스보다 군복이 잘 어울리는 것으로 유명했던 마거릿 히긴스 기자에게 여성 최초의 퓰리처상을 안겨준 것도 한국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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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을 취재한 종군 기자들의 활약상을 담은 ‘한국전쟁과 언론’.  아리랑TV 제공
한국전쟁을 취재한 종군 기자들의 활약상을 담은 ‘한국전쟁과 언론’.
아리랑TV 제공


전쟁의 현장을 일반인들이 안방에서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죽음을 무릅쓰고 현장에 뛰어든 종군기자들의 활약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6·25전쟁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리랑TV의 데일리 매거진쇼 ‘아리랑 투데이’는 6·25 60주년을 맞아 5부작 연속기획 ‘한국전쟁과 언론’을 21~25일 오전 7시에 방송한다.

제작진은 전쟁 발발에서 서울 함락, 인천상륙작전에서 중공군에 밀린 연합군의 후퇴, 휴전 협정 등으로 기간을 나눠 당시 주요 보도 내용을 소개하고 종군기자의 눈을 통해 한국전쟁을 되돌아본다.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 발발 이후 세계의 시선이 한반도로 쏠리면서 종군기자들의 취재 경쟁이 시작됐다. 한국전쟁을 최초로 보도한 기자는 UP통신(현 UPI통신)의 잭 제임스였다. 제임스의 기사는 미국 대사관이 본국에 타전한 보고보다 빨랐다.

전쟁 발발 후 북한군의 공세에 밀리기만 하던 한국군과 유엔군은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했다. 이 사건의 1보는 AP통신 신화봉(영어명 빌 신) 기자의 기사로 미국사령부 발표보다 9시간 앞섰다. 타전 이후 맥아더 사령부가 항의할 정도로 발빠른 보도였다.

이 밖에도 당시 기사와 사진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전하고, ‘대동강 다리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UP통신의 맥스 데스포 기자와의 대담을 통해 휴전협정 현장과 이산가족의 아픔 등을 직접 들어본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2010-06-21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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