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대작다큐 ‘동아시아 생명대탐사 아무르’ 이광록.손성배 PD
“하도 우여곡절이 많아서 방송이 되기만 하면 영혼도 판다고 했습니다. 그 정도로 촬영 여건이 열악했고 변수가 많았습니다. 마침내 방송이 되니 그저 감개무량할 뿐입니다.”손성배 PD는 이렇게 말하며 껄껄 웃었다.
마지막 편집 작업을 하느라 분주하게 오가던 이광록 PD는 “도중에 ‘왜 내가 이걸 시작했을까’ 하는 후회의 순간도 많았다”며 “아쉬움도 많지만 드디어 방송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이렇듯 복잡한 감정을 안긴 작품은 KBS 대작 자연 다큐멘터리 ‘동아시아 생명 대탐사 아무르’. 지난해 12월 프롤로그가 방송된 데 이어 오는 6-7일과 13-14일 밤 10시 KBS 1TV를 통해 1-4부가 방송되는 대작 다큐멘터리다.
제작기간 1년, 제작비 9억 원. 촬영일수 210일이 소요된 이 작품의 뒷이야기를 지난달 31일 여의도 KBS 연구동에서 들었다.
몽골에서 발원해 러시아-중국의 국경을 가르며 오호츠크해로 흘러들어가는 길이 4천400㎞의 아무르강은 동북아 생태와 문화의 원류이자, 호랑이와 표범, 사향노루, 두루미, 귀신고래 등 멸종 위기종의 마지막 서식지다. 또한 선사시대 인류의 생존방식을 알려주는 순록과 말 등 유목 문화의 원형이 남아있는 곳이다.
손 PD는 “그동안 아무르 지역을 부분적으로 조명한 작품은 있었지만 우리처럼 그 발원지부터 전체를 조망한 작품은 없었다. 우리가 세계 최초”라며 “미흡하지만 많이 담아내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방송 카메라가 세계 구석구석을 찍는 현대사회에서 왜 아무르 전체를 조망한 다큐는 없었을까.
”그만큼 촬영 접근성이 떨어졌습니다. 러시아와 중국의 접경지대인 데라 촬영 허가를 받는 절차 하나하나가 너무나 까다로웠고 겨울에는 기온이 영하 30-40도로 내려가 겨우 반입한 장비도 작동이 안되는 실정이었죠. 대규모 군집을 이루는 생물종도 없어 촬영하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잠복 촬영이 동반돼야했습니다.”(손성배 PD)
촬영보다 허가의 문제가 더 컸다. 2009년 4월 기획안이 완성됐지만 첫 촬영은 그해 12월에야 나갈 수 있었다. 또 2010년 여름에도 3개월간 촬영 허가가 나지 않아 발이 묶였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 당국 관계자들과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이광록 PD는 4차례 조사를 받아야했고 결국 러시아로부터 5년간 입국 금지 처분을 받았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일을 진행했는데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4번 조사를 받았어요. 촬영 테이프도 빼앗겼다가 두달여 후에 겨우 돌려받았어요. 테이프를 빼앗겼을 때의 마음고생은 말도 못합니다.”(이광록 PD)
’아무르’는 아무르강이 대초원과 타이가 숲을 잉태하고 바다로 흘러가 황금어장을 만드는 장대한 흐름을 ‘자연과 인간’이라는 틀에서 담아낸다.
”인간과 자연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하나가 돼 움직이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원주민 하면 ‘미개인’이라 생각하지만 대자연속 아무르 지역 원주민들의 삶을 보면 과연 누가 미개인이고 문명인인지 의문이 갑니다. 그들이 자연 속에서 자연에 대한 예의를 갖추며 생태순환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우리를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하고 싶었습니다.”(손 PD)
그래서 사냥 등 자극적일 수 있는 장면들도 은유적인 표현으로 순화해서 최대한 절제미를 살렸다. 이들이 이날 보여준 장면 중 하나는 나무 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반달가슴곰을 현지 원주민들이 막대기로 슬쩍 자극해 사냥하는 특이한 모습이었다. 곰이 잠에서 깨 으르렁거리며 나무 밖을 빠져나오자 곧이어 포수의 ‘탕’ 소리가 들렸다. 그다음에는 나뭇잎 위에 쌓인 눈이 우수수 떨어지는 장면이 이어졌다. 곰과 싸우거나 피를 흘리며 쓰러진 곰의 모습을 비추지는 않았다.
”사냥으로 원주민들의 삶이 매도당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우리도 시청률을 위해서는 자극적인 장면을 배치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지만 그렇게 되면 원주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사냥을 하는 것이고 자연을 경외하며 숭배하는데 자칫 잘못하다가는 그들의 모습이 야만적으로 비칠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자극적이진 않지만 보는 맛이 있도록 편집하는 데 주안점을 뒀습니다.”(손 PD)
이동로가 없어 패러글라이드, 말, 순록썰매, 장갑차, 헬기, 마차, 오토바이 등 탈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해야 했다는 이들은 영하 40도의 추위, 모기떼가 온몸을 물어뜯는 찌는 더위 속에서 설원에 모여있는 몽골리안가젤의 이동 장면, 유빙 위에서 새끼를 키우는 물범, 대초원의 말 경주대회, 백조의 번식 장면, 얼음을 뚫고 2㎞에 이르는 그물을 놓아 물고기를 일망타진하는 어업 장면 등 장관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손 PD는 “촬영하다가 어느 순간 길을 잃어 나 혼자 거대한 숲속에 서 있던 적이 있는데 왜 그곳 원주민들이 정령을 믿는지 알겠더라”며 “자연 친화적인 삶이 어떤 것인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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