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영역 부각” vs “루머 양산”
가수 서태지(본명 정현철.39)와 배우 이지아(본명 김지아.33)의 결혼과 이혼 소식은 사회적으로 큰 충격파를 던졌다.서태지가 데뷔 이래 사생활 노출을 최대한 자제하는 행보로 일관했다고는 하지만 두 사람이 14년간이나 사적인 관계를 숨겨왔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인터넷에서는 ‘농협보다 튼튼한 서태지와 이지아의 보안법’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돌았다.
서태지와아이들 시절 일한 스태프와 측근들의 설명에 따르면 서태지는 조용한 성격과 음악에만 집중하고 싶은 욕심이 강해 외부의 시선에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따라서 언론과 대중이 붙여준 ‘신비주의’가 적어도 계산된 전략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계산되지는 않았더라도 서태지의 행보는 신비주의 그것이었고 많은 가요 관계자들은 그의 신비주의가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조용한 성격에 음악 욕심 강해” = 서태지의 남다른 행보는 이미 서태지와아이들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태지는 1집 ‘난 알아요’가 대히트한 후 뮤지션으로서의 모습에만 충실하고자 방송 출연을 자제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태지와아이들 시절의 한 매니저는 23일 “서태지는 마이클 잭슨을 좋아했다”며 “마이클 잭슨의 신비로운 부분을 좋아해 영향을 받은 셈이다. 방송 등에서 노출을 자제하는 것이 음악적으로 생명력을 길게 가져갈 수 있다고 여긴 것 같다. 서태지와아이들이 3집 ‘발해를 꿈꾸며’ 때 ‘가요톱텐’ 1위 후보였음에도 출연을 거부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매니저도 “당초 서태지와아이들은 2집까지 활동한 후 해체를 하고 각자의 노선을 가려했다”며 “서태지가 3집에서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하고 방송을 안 하는 조건으로 3집을 냈다. 그래서 3집을 콘서트에서 공개했고 콘서트로 활동을 마무리했다. 4집 ‘컴백홈’을 내고 방송에 출연했지만 3개월 만에 해체를 발표했기에 활동 기간이 무척 짧았다”고 했다.
이런 행보는 다분히 서태지의 성격에 기인했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서태지와아이들 시절 함께 일한 한 측근은 “서태지는 음악만 아는 친구”라며 “기획사 차원에서 클럽을 데려가려 해도 음악 작업을 하겠다며 혼자 집으로 갔다. 바깥출입도 많이 하지 않았다. 서태지는 업소는 물론 돈 받는 행사도, 정계와 관련된 무대도 꺼렸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유명세에 비해 노출이 안되니 신비주의라는 분석이 자연스레 따라붙었다. 노출을 자제한 것은 의도일 수 있으나 목적을 둔 전략은 아니었다”고 했다.
서태지는 1996년 1월 서태지와아이들을 해체한 후 자신을 더욱 숨겼다. 미국으로 건너갔기에 팬들은 서태지의 모습을 광고로 접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이후 1997년 가요계에서는 ‘미국 교민사회 소식통’발로 “서태지가 미국 남부 애틀랜타의 한 별장에서 재미교포와 결혼했다” “애틀랜타에서 주유소를 경영한다” 등의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태지와 그의 가족, 스태프 모두 루머가 돌 때마다 이를 부인했다.
2000년 그가 귀국한 후에도 이런 신비주의 행보는 계속됐다.
그는 몇년에 한번 음반을 냈고 활동 휴지기에도 사생활이 전혀 포착되지 않았다. 그가 소유한 논현동 빌딩 직원들도 그가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녀 그를 거의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소속사인 서태지컴퍼니 직원들도 서태지의 음반 홍보 외에 사적인 질문에는 일절 ‘모르쇠’로 일관했다.
본인 역시 이지아와의 관계가 알려진 이후에도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현재 어디에 체류하고 있는지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신비주의 ‘양날의 검’ 될 수도 = 가요계는 서태지의 신비주의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가요 관계자는 “서태지에게 막연한 동경이 생기고 ‘문화대통령’이란 칭호까지 붙은 데는 그의 사적인 영역이 배제된 것도 한 이유”라며 “서태지에 대한 평가는 음악적으로만 이뤄진 덕택에 팬들의 충성도가 유지됐고 음반과 공연 활동에 대한 신뢰가 컸다. 신비주의가 긍정적으로 작용한 셈”이라고 말했다.
음악 방송의 한 PD도 “서태지의 화두는 늘 음악에만 집중됐다”며 “이 때문에 팬들의 활동도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제도 폐지 운동, 방송심의 개정 운동, 저작권 보호 운동 등 불합리한 제도 개선에 앞장서는데 치중됐다. 실제 사전심의제도는 ‘시대유감’ 가사가 심의에서 통과되지 않은 걸 계기로 이후 폐지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신비주의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을 경우는 그것이 깨졌을 때와 악성 루머 등이 나돌 때다.
아이돌 그룹이 소속된 한 음반기획사 대표는 “지금은 ‘사생팬(사생활을 좇는 팬)’이 많고 인터넷 문화의 발전으로 일거수일투족이 공개돼 신비주의가 불가능한 세상이 됐지만 1990년대에는 가능했다”며 “그 신비로움이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믿음이 강할수록 실망도 크듯 연예인은 대중에게 그려진 환상이 깨질 때 인기에 치명타를 입기 때문이다”고 했다.
그는 “또 누군가는 연예인의 신비주의를 다른 걸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일이 불거진 후 서태지가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인터넷에 루머가 끊임없이 양산되고 있는 것도 그 부작용 중 하나다.
’이지아가 작사해 부른 노래 ‘뱀파이어 로맨스’의 가사가 서태지를 두고 썼다’는 해석이 나오고 서태지가 과거 인터뷰 때 했던 결혼 관련 발언들이 ‘네티즌 수사대’에 의해 그럴싸한 해석이 붙여져 재등장하는 가 하면 이지아의 행적을 추적하는 ‘신상 털기’가 잇따르는 등 각종 의혹.루머들이 확대 재생산되는 모습이지만 어느 것 하나 분명한 해답이 되지 못해 의혹만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태지의 신비주의에 대한 득실을 따지는 것 자체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 씨는 “신비로움은 우리가 느끼는 것”이라며 “이번 사건은 ‘서태지를 한명의 슈퍼스타로 보느냐, 개인의 한 사람으로 보느냐’의 문제다”고 했다.
그는 이어 “연예계의 관례로 봤을 때 팬들은 서태지의 사생활을 몰랐다는 점에서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개인의 한 사람으로서 얼마든지 비공개로 할 수 있다”면서 “시대를 풍미한 스타냐, 사적인 삶을 살고 싶은 한 사람이냐, 이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인 지 또는 둘 모두를 포용할 지는 오롯이 팬들의 몫이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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