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유보에 책임자 사퇴까지…광주비엔날레 ‘파행’

전시 유보에 책임자 사퇴까지…광주비엔날레 ‘파행’

입력 2014-08-10 00:00
업데이트 2014-08-1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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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통령 풍자한 홍성담 걸개그림 논란’광주 정신’ 무색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그림의 전시를 유보해 논란을 빚은 광주비엔날레가 결국 책임 큐레이터가 사퇴하는 등 파행을 면치 못하고 있다.

광주비엔날레의 창설 20주년을 기념해 본행사 개막(9월5일) 전 야심차게 마련한 특별프로젝트가 이처럼 파행을 거듭하면서 ‘광주 정신’을 기치로 내건 행사의 의미는 사실상 퇴색하게 됐다.

광주비엔날레 20주년 기념 특별프로젝트 책임 큐레이터인 윤범모 가천대 교수는 10일 오전 광주 무등파크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시 파행에 따른 도덕적 책임을 간과할 수 없어 사퇴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8일 광주비엔날레 측은 전시와 강연, 퍼포먼스로 구성된 특별프로젝트 ‘달콤한 이슬-1980 그 후’를 개막하면서 민중미술작가 홍성담의 걸개그림 ‘세월오월’의 전시를 유보하기로 했다.

가로 10.5m, 세로 2.5m 크기의 작품 ‘세월오월’은 80년 5월 광주정신이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보듬는다는 취지에서 5·18 당시 시민군과 주먹밥을 나눠주던 오월 어머니가 세월호를 들어 올려 아이들이 전원 구조되는 장면을 표현했다.

하지만 작품 속에 박 대통령을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의 허수아비로 묘사한 부분 등이 등장하는 것을 두고 광주시에서 수정을 요구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결국 홍성담 작가는 개막 당일 허수아비로 표현된 박 대통령의 모습 위에 닭 그림을 붙인 수정본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광주비엔날레 재단은 개막식에 앞서 윤 교수를 비롯해 장경화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관, 정연심 홍익대 예술학부 교수, 미셸 현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 캠퍼스 미술관 학예연구원 등 전시 큐레이터 4명과 장시간 회의 끝에 결국 걸개그림의 전시를 유보하기로 했다.

윤 교수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시 여부를 결정하는 회의에서 전시 총괄 책임자로서 한계를 느꼈다”며 “사퇴를 표명하고 회의장을 나왔으며 ‘세월오월’ 전시 유보라는 결정은 책임 큐레이터의 불참 속에서 강행된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예술가의 표현 자유를 보장하는 일과 광주 정신은 별개의 것이 아닐 것”이라며 “예술적 표현의 자유는 그 어떠한 문제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이며, 그것을 지키는 것이 광주 정신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예술인의 반발도 확산하고 있다.

개막식에 앞서 걸개그림 제작에 참여한 지역 작가들과 시민 50여명은 광주시립미술관 앞에서 가로 30m, 세로 10m 크기의 대형 프린트 작품을 펼치는 퍼포먼스를 벌이며 항의했다.

이번 특별 프로젝트의 전시에 참여한 일부 작가는 전시 참여를 취소하고 작품을 철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광주 정신’을 승화해 치유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던 당초 프로젝트의 취지는 무색해진 셈이다.

주최 측은 이번 전시에 나치 시절 저항작가인 독일의 여류 화가 케테 콜비츠의 작품과 1930년대 루쉰에 의한 항일 목판화 운동 작품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대거 선보인다고 홍보했지만 이번 사태로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게 됐다.

미술평론가 정준모씨는 연합뉴스와 한 통화에서 “아직도 광주비엔날레가 5·18 민주정신을 제대로 승화시켜내지 못하고 있다”며 “5·18 민주정신을 세계의 보편적인 민주정신으로 승화하지 못하고 지역 정신으로만 남아있는 한계를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논란의 중심에 선 홍성담은 1980년대 대표적인 민중미술작가로, 지난 2012년 11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아기 모습을 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출산하는 듯한 그림을 전시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한편 문화계 일각에서는 이번에 논란이 된 ‘세월오월’이 너무 직설적이어서 풍자와 해학을 예술적으로 승화하는 데는 오히려 다소 미흡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교수도 “세월호를 중심으로 두고 작업을 전개했지만, 불행하게도 주객이 전도돼 본질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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