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최명근 작가, 실명 첫 장편 ‘정막개’ 뒤늦게 출간
평생을 필명으로 살다 세상을 떠난 소설가 최명근(1936~1996)이 뒤늦게 자기 이름을 찾았다. 최근 출간된 최씨의 장편 역사소설 ‘정막개’(기파랑)는 그가 필명이 아닌 자기 이름 석자로 빛을 본 첫 작품이다.1936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최씨는 1955년 부산대학교 사학과 1학년 때 소설가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현대문학’ 10월호에 ‘후천화일점(後天話一點)’으로 등단했다. 필명이 유행하던 분위기에 최씨는 본명 대신 최희성이라는 이름으로 출품했다.
첫 필명은 그의 선택으로 지었지만, 그 후에는 원치 않아도 필명을 쓸 수밖에 없었다. 10남매의 첫째로 자란 그는 동생들 뒷바라지를 하려고 병역을 피해 신분을 숨겨야 하는 처지가 됐다.
1966년 한국일보 주최 추리소설 공모에 ‘흙바람’이 당선됐을 때는 동생 이름 최정협을 썼다. 필력을 인정받아 한국일보 ‘주간여성’ 기자로 일한 16년 동안 최정협을 필명으로 활동했다.
1986년 삼성문화재단 소설 공모에는 이순신이 자살을 했다는 야사(野史)를 토대로 쓴 ‘자결고’가 당선됐다. 당시 필명은 최명진이었다.
’정막개’는 최씨가 1982년 경향신문 주최 장편 공모에 동생 최민조 이름으로 낸 작품이다. 말을 보살피던 최하급 관노(官奴) 정막개가 중종반정에 가담하면서 상호군 자리까지 오른 실화를 바탕으로 무지막지한 권모술수와 인간성 파멸의 과정을 그린 장편이다.
당시 심사위원 김동리는 “내가 본 한국의 어느 역사소설에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고 극찬했다. 김동리는 최씨의 등단작도 추천했지만 ‘정막개’가 최씨 작품인 걸 알아보지 못했다.
최씨는 당시 마감 시간에 쫓겨 미완인 채로 작품을 냈다. 작품은 최종심 2편까지 올랐지만 탈락했다.
문학상 현상금과 기자 월급을 타서 동생들을 보살핀 최씨는 미혼인 채 위암과 폐암으로 1996년 별세했다.
’정막개’가 다시 세상의 빛을 본 것은 최씨 동생 정협씨가 숨지기 전 여동생 예욱(65)씨에게 자신이 갖고 있던 원고를 넘기면서다. 예욱씨는 남편인 김재환(69) 한림대 영문과 명예교수에게 이 원고를 줬다.
김씨가 넘겨받은 원고는 애초 경향신문 공모에 낸 원고지 1천200장짜리 원고에 400여장이 추가된 완성본이었다. 최씨가 생전에 완성했지만,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김씨는 주변의 도움으로 출판사를 만나 작품을 책으로 출간했다.
김씨는 고인에 대해 “젊었을 때부터 타고난 이야기꾼이었고 줄거리를 박진감 있게 끌어가는 솜씨가 탁월했지만 가정이 불우해 꿈을 못 펼친 게 안타깝다”며 “술과 담배를 좋아하며 문학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는데 환경이 뒤따라주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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