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소설가 기대주 7人, 테마 소설집 ‘비’ 펴내
추적거리며 내리는 비는 이성(理性)보다는 주로 감성(感性)의 영역에 속한다. 먼지 쌓인 기억의 창고를 슬며시 열어보게 하거나 인식 바깥 몽환적 상상의 공간으로 내달음 치게 만들곤 하는 것이 비가 지닌 심상의 속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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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지닌 심상의 속성 ‘변주’
비가 소설이 됐다. ‘비’(열림원 펴냄)는 30대 중반 안팎의 비슷한 또래 여성 소설가 7명이 비를 소재 혹은 이미지 삼아 함께 만든 테마 소설집이다.
장은진(35), 김숨(37), 김미월(34), 윤이형(35), 김이설(36), 황정은(35), 한유주(29) 등 7명은 모두 등단한 지 5~10년 안에 두권 이상의 책을 내며 활발히 활동 중인, 그래서 신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성 문단에서 제 몫을 주장할 만큼은 아닌 작가들이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욱 기대되는 작가들이기도 하다.
몸을 비틀어 소설 안으로 스며든 비에 대한 이들의 심상은 여러 모습으로 다양하게 변주된다.
‘시가 나를 찾아왔어.’ 하며 문학 언저리로 잠시나마 이끌어준, 비에 젖은 시화전 전단지를 본 날(김미월의 ‘여름 팬터마임’)이 되기도 하고, 추락하기만 하는 삶의 모습에서 결코 상승하지 않는 빗방울과 같은 운명(황정은의 ‘낙하하다’)을 유추해낸다.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삶의 추락 경험은 빗방울이 수직 낙하할 수밖에 없는 운동법칙으로 환유된다.
그런가 하면 부친의 성 학대 또는 남편의 성 도착의 배경이 되는 자연현상(김이설의 ‘키즈스타플레이타운’)이 되기도 하고, 내리던 중 멈춰 빗방울로 남아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윤이형의 ‘엘로’)이 되기도 한다.
김숨은 ‘대기자들’에서 치과 대기실에서 순번을 받아 기다리는 인물들을 통해 한 편의 부조리극처럼 현대인의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비의 불안정성에 빗댔다.
장은진은 ‘티슈, 지붕, 그리고 하얀 구두 신은 고양이’를 통해 관계가 단절된, 그러나 간절히 소통을 원하는 이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한유주의 ‘멸종의 기원’은 삶과 죽음을 우기와 건기 등 날씨로 나눠서 풀어간다.
●작품마다 판타지 요소 많아
공교롭게 작품마다 판타지적인 요소가 많다. 비 자체가 흔한 소재이기에 작가적 개성과 상상의 몫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던 듯하다. 마치 하나의 시제(詩題)를 받은 뒤 서로 다르게 써내려간 백일장 작품을 읽는 듯한 재미가 나름대로 쏠쏠하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2011-02-26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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