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운동계 거목의 삶 통해 읽는 20세기 한국

여성·인권운동계 거목의 삶 통해 읽는 20세기 한국

입력 2012-12-29 00:00
업데이트 2012-1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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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정 평전 】 이문숙 지음 삼인 펴냄

“그럭저럭 평온한 나날을 보내던 이우정을 뒤흔든 사건이 터졌다. 이 땅의 지식인·학생·종교인들의 가슴에 거대한 느낌표를 찍고 그들의 발길을 한길로 이끈 전태일의 분신. (중략) 전태일의 분신이 던지는 신랄한 추궁은 이우정도 비켜 가지 않았다.”

전형적인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나 살며 비교적 무난하게 학업을 이어 나간 대학교수는 전태일의 분신 사건(1970년 11월 13일)을 계기로 가보지 않은 길로 자신을 몰아넣었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 여성·인권운동을 뿌리내리고 ‘여성 운동의 대모’로 거듭났다. 바로 이우정(1923~2002) 선생이다.

‘이우정 평전’(이문숙 지음, 삼인 펴냄)은 교수, 신학자, 인권운동가, 국회의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시대의 등불로 산 그의 삶을 세세하게 살핀다.

이우정 선생은 분신 사건 이후 주변의 삶을 또렷하게 응시할 수 있었다. 동시에 자신이 지금껏 얼마나 평탄하게 살았는지 깨달았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강제징용을 피해 숨어 살기도 했지만 경기고녀(현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한국문학·세계문학 등을 읽고 자랄 환경은 됐다. 해방과 전쟁을 겪으면서 큰오빠의 페인트 공장은 인민군에 압수당하고, 둘째 오빠는 납북돼 가족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그래도 선생에게는 도움의 손길이 닿았다.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한 뒤 캐나다연합교회의 지원으로 해외 유학을 하고 모교에 교수로 부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건이 터진 것이다. 학교를 벗어난 이우정은 1973년 한국교회여성연합회 회장이 됐고, 본격적인 여성·사회운동을 시작했다.

박정희 독재에 반발하며 준비한 초교파적 연합예배가 민중봉기로 낙인찍힌 ‘남산사건’, 유신 정부의 관광진흥정책에 정면 도전한 ‘기생관광 반대 운동’, 긴급조치 9호에 반대하며 지식인·언론인 등이 주도한 ‘3·1 구국 선언문 낭독’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 한가운데 그가 있었다. 억압과 고난 속에 놓인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소식이 들리면 가장 먼저 현장을 찾으면서 여성 노동자의 어머니가 됐다. 1991년에는 정계에 입문해 14대 민주당 국회의원, 새천년민주당 상임고문 등을 지냈다.

여성·인권·민족운동의 투사로, 선생으로, 친구로 살아온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20세기 한국의 시대 흐름을 읽을 수 있다. 2만원.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2012-12-2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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