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과 이별을 해보신 적이 있나요?

연인과 이별을 해보신 적이 있나요?

입력 2013-02-16 00:00
업데이트 2013-02-16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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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상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량원다오 지음 흐름출판 펴냄

은은한 달빛 속에서 읽는 게 좋겠다. 폼 잡으란 말 아니다. 여유를 가지기 위해서다. “달은 자신의 형상을 바꿔 가며 시간을 나타내지만 해는 그렇지 않다. 때문에 달에 속한 시간은 사람들로 하여금 조용히 관조하고 묵상하고 기억하게 한다. 인간과 시간 사이에 진퇴와 선회를 위한 거리를 빌려주는 것이다. 때문에 달을 바라보면서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지는 않은지, 나와 같은 빛과 풍경을 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해를 대할 때는 이런 여유를 갖지 못한다.” (10월 8일 ‘달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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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통신이 이러한 물리적 세계의 한계를 허물어 버렸다. 거리가 없다 보니 길도 없어졌고, 길이 없다 보니 출발점과 목적지도 사라져 버렸다. 나와 그 사이에 거리도 없고 구별도 없어졌다. 때문에 그는 사라졌다. 나도 그렇다.” (11월 11일 ‘소실된 거리’) 흐름출판 제공
“실시간 통신이 이러한 물리적 세계의 한계를 허물어 버렸다. 거리가 없다 보니 길도 없어졌고, 길이 없다 보니 출발점과 목적지도 사라져 버렸다. 나와 그 사이에 거리도 없고 구별도 없어졌다. 때문에 그는 사라졌다. 나도 그렇다.” (11월 11일 ‘소실된 거리’)
흐름출판 제공
8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153일간의 일기를 책으로 묶어낸 ‘모든 상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량원다오 지음, 김태성 옮김, 흐름출판 펴냄)에 등장하는 키워드는 이렇다. 부재, 인연, 이름, 유행가, 기억, 망각, 용서, 상처, 바다, 편지, 하구, 짝사랑, 텅빈 방, 이사, 흔적…. 연인과 이별한 뒤 밑바닥까지 내려갔다 다시 떠오른 경험에 대한 얘기다. 키워드만 봐도 묵은 소주 냄새가 풀풀 난다. 원제도 딱 맞다. 아집(我執).

그렇기에 푹 꺼져 든다. “바다는 너무나 무정하게도 젊은이들의 호방한 기개와 열정을 팔아 버리면서 선악에 대해서는 추호의 관심도 갖고 있지 않다. 가장 비겁한 탐욕과 가장 고상한 영웅심과 용기에 이르기까지 전부 팔아 버린다.”(8월 30일 ‘어두운 마음’) 다 묻어 버리고 싶다. “누군가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면, 새로운 나를 만들고자 한다면, 절대로 간직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잘라 버리고 싶다면, 물 속에 던져 버려라. 누군가 그 기억을 찾지 않는다면 수백 년, 수천 년의 세월이 흘러 바다가 마르고 바위가 녹아 다시 해를 보게 되었을 때는 이미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되어 있을 것이다.” (8월 18일 ‘기억을 수장하다’)

이렇게 추락하는 의식을 어떻게 끌어올릴까. “우리는 사랑의 정도를 표현할 때 ‘사랑의 깊이’를 따지지 ‘사랑의 높이’를 따지진 않는다. 인간들의 의식 깊은 곳에서 사랑의 본질은 후미진 곳에 깊이 가라앉아 있는 것이고 심지어 사악한 것이다. 사랑은 결국 대단히 침울하고 무서운 것이다. 나는 매일 그에 대한 나의 애욕의 깊이를 측량했었다. 바닷속으로 잠수해 들어가서 하늘의 해도 보지 못하고 끝나는 곳이 어디인지도 알지 못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 깊이는 스스로도 두려울 정도였다.” (11월 2일 ‘깊이’) 깊이에 빠질 게 아니라 높이를 되돌아봐야 한다.

저자는 중화권 젊은이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평론가다. 명성에 걸맞은 도시적·문학적 글솜씨다. 1만 4000원.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2013-02-1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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