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영어 공세 속 우리글 5000년 생존사

한자·영어 공세 속 우리글 5000년 생존사

입력 2014-10-04 00:00
수정 2014-10-04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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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전쟁/김흥식 지음/서해문집/520쪽/1만 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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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실존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문화와 역사, 사유의 변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 우리를 우리이게 하는 것이 말인 탓이다.

저자는 수천년을 이어온 우리의 말글살이를 단호히 ‘전쟁’으로 규정짓는다. 한글 대 한문의 전쟁이 500년 동안 지속됐고, 그 전흔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글 전용과 한자 혼용의 전쟁으로 형태를 바꿔 열전과 휴전을 반복하며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여기에 ‘영어 공용어화’ 주장까지 등장해 한글과 우리말에 전쟁을 걸어오는 모양새다. 뿐만 아니다. 문화폭력적인 표준어의 힘 등에 의해 시대 뒤쪽으로 스러져가는 소중한 언어들, 방언들이 전쟁터의 전사자처럼 속출하고 있다.

우리의 말과 글이 거쳐온 5000년의 시간을 ‘전쟁’이라는 틀 안에 넣고 바라보는 통시적 접근법을 큰 줄기삼았다. 또한 명멸해간 다른 언어와 비교 연구하는 시각을 덧붙였다. 말과 글을 둘러싼 숱한 논쟁들의 핵심 맥락을 객관성을 놓지 않은 속에서 쉽게 풀어낸다.

숱한 역사 속 사례들은 언어와 문자의 상실이 국가와 민족의 비극으로 바로 이어짐을 증명한다.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은 중국 대륙을 300년 동안 세계 최대 국가 지배자로서의 위용을 자랑했지만, 이제는 언어와 문자를 사실상 상실하고 중국의 한족이 보호해줘야할 대상으로 전락했다. 하와이의 왕 카메하메하 4세는 1855년 몰려드는 무역상과 거래하기 위해, 또 외국인과 대등한 관계에 서고자 ‘영어교육의 보편화’를 강조했다. 그 결과 왕이 바라던 대로 하와이에서 영어는 보편화됐고 미국 본토로 편입까지 됐지만, 정작 대부분 하와이 사람들은 저임금 노동자가 될 자유만 얻었을 따름이다. 책 말미 즈음에서 저자는 “대한민국에 영어가 본격적으로 흘러들어온 시기는 1945년 이후로 잡아도 고작 70년밖에 되지 않았다”면서 “향후 100년 이상 영어 침략이 지속적으로 이뤄진 뒤에도 우리말이 남아있을 거라고 믿는 것이 오히려 특이한 생각이 아닐까”라고 스스로 묻는다. 568돌 한글날을 핑계 삼아 음미해서 읽다 뜨끔해지는 경고들이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2014-10-04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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