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의 역정/리쩌허우 지음/이유진 옮김/글항아리/556쪽/3만 2000원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만나는 고색창연한 걸작 예술품, 굳이 걸작이 아니더라도 옛사람의 모습과 시절의 혼이 절절히 담긴 흔적 앞이라면 묘한 감상에 빠지기 마련이다. 때로는 평소 쉽게 얻지 못할 교훈까지를 덤으로 얻기도 한다. 시·공간을 넘어선 채 변함없이 우러나는 그 울림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미의 역정’은 바로 그 아름다움의 도도한 울림이 왜 생겨나는지의 궁금함을 풀어주는 역작이다. 저자는 ‘중국 현대미학의 제1바이올린 주자’라는 리쩌허우(李澤厚·1930∼)이다. 1980년대 문화혁명의 금욕주의에서 탈출하고자 했던 중국인, 특히 젊은이들에게 사상적 돌파구를 제시했다는 중국 계몽운동의 기수. 그는 미학자로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책에서 ‘미학은 제1의 철학’임을 소리 없이 강조한다. 그리고 그 미학의 종점은 바로 종교를 대신하는 것이라는 예사롭지 않은 선언으로 귀결된다.
중국 젊은이들이 베껴 쓰고 심지어 통째로 외웠다는 리쩌허우의 대표작인 이 책은 왜 그가 미학을 제1의 철학으로 여겼는지를 보여준다. 책의 기본 구성은 구석기시대 토템부터 시작해 상상 속 동물인 도철을 대표로 하는 청동 문양, 춘추전국시대의 이성정신 등을 거쳐 송·원나라의 산수화, 명·청의 문예사조까지 훑는 흐름. 편편에 숨은 사상과 미적 심미안이 그의 명성을 그대로 입증한다.
많은 이들이 ‘동양적 아름다움의 본질을 밝혔다’고 평가하는 책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누적과 침전이다. 곳곳에 그 흔적과 상징이 숨어 있다. 첫 사례는 구석기시대인 산딩둥인(山頂洞人)들이 적철석을 사용해 구멍을 꿰는 끈을 물들이고 시체 곁에 붉은 가루를 뿌리던 모습이다. 그 붉음은 선명한 붉은빛에 대한 동물적 생리반응이 아니라 사회적 무술의례의 상징적 의미이다. 바로 자연형식(붉은색) 안에 이미 사회내용이 누적 침전된 것이다.
중국 선사시대에 보편적인 토템의 상징인 용비봉무(용이 날고 봉황이 춤춘다)도 산딩둥인이 붉은 가루를 뿌리던 원시 무술의례가 부호화·도상화된 것이다. 도공이 구워내고 사대부들이 즐겨 썼던 자기도 예외는 아니라고 한다. “송나라대 자기는 당대의 선명하고 아름다운 색깔, 명·청대의 용속한 아름다움과 완전히 다르지만 이 모든 것은 서로 보완하고 조화를 이뤄 한 시대의 미학 풍격이 됐다.”
흔히 ‘백대(百代)가 모두 진나라의 제도를 따랐다’는 말이 회자된다. 건축예술도 예외는 아니어서 모든 시기의 건축은 선진시대에 다져진 기본규범을 벗어난 적이 없다고 한다. 거기에도 중국 민족의 특징인 실천이성 정신이 담겼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 실천이성 정신은 종교로까지 연결된다. “시대 변천과 생활 발전에 따라 변한 중국 석굴예술은 중국 민족이 불교를 수용한 이래 개조·소화하고 벗어나기까지 자신의 형상 방식으로써 반영한다.”
‘아주 오래된 고전작품들이 여전히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건 그 속에 체현된 구조와 심리구조가 상응하기 때문이고 그것은 오랜세월 누적, 침적되어 생긴 것이다.’ 이 메시지는 ‘중국문학 최고의 보물이라는 홍루몽에서 마지막으로 맺어진다. “홍루몽은 마침내 아무리 읽어도 싫증 나지 않는 봉건말기의 백과사전이 되었다. 상층 사대부의 문학이지만 이것이 묘사한 인정세태며 슬픔과 기쁨은 명대의 시민문예가 더할 바 없이 승화된 것이기도 하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만나는 고색창연한 걸작 예술품, 굳이 걸작이 아니더라도 옛사람의 모습과 시절의 혼이 절절히 담긴 흔적 앞이라면 묘한 감상에 빠지기 마련이다. 때로는 평소 쉽게 얻지 못할 교훈까지를 덤으로 얻기도 한다. 시·공간을 넘어선 채 변함없이 우러나는 그 울림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베이징 북쪽 교외지역인 화이러우구 싼두허촌의 무톈위 장성. 만리장성의 공간적인 연속은 시간의 유구한 이어짐을 나타내며 활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글항아리 제공
글항아리 제공
중국 젊은이들이 베껴 쓰고 심지어 통째로 외웠다는 리쩌허우의 대표작인 이 책은 왜 그가 미학을 제1의 철학으로 여겼는지를 보여준다. 책의 기본 구성은 구석기시대 토템부터 시작해 상상 속 동물인 도철을 대표로 하는 청동 문양, 춘추전국시대의 이성정신 등을 거쳐 송·원나라의 산수화, 명·청의 문예사조까지 훑는 흐름. 편편에 숨은 사상과 미적 심미안이 그의 명성을 그대로 입증한다.
많은 이들이 ‘동양적 아름다움의 본질을 밝혔다’고 평가하는 책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누적과 침전이다. 곳곳에 그 흔적과 상징이 숨어 있다. 첫 사례는 구석기시대인 산딩둥인(山頂洞人)들이 적철석을 사용해 구멍을 꿰는 끈을 물들이고 시체 곁에 붉은 가루를 뿌리던 모습이다. 그 붉음은 선명한 붉은빛에 대한 동물적 생리반응이 아니라 사회적 무술의례의 상징적 의미이다. 바로 자연형식(붉은색) 안에 이미 사회내용이 누적 침전된 것이다.
중국 선사시대에 보편적인 토템의 상징인 용비봉무(용이 날고 봉황이 춤춘다)도 산딩둥인이 붉은 가루를 뿌리던 원시 무술의례가 부호화·도상화된 것이다. 도공이 구워내고 사대부들이 즐겨 썼던 자기도 예외는 아니라고 한다. “송나라대 자기는 당대의 선명하고 아름다운 색깔, 명·청대의 용속한 아름다움과 완전히 다르지만 이 모든 것은 서로 보완하고 조화를 이뤄 한 시대의 미학 풍격이 됐다.”
흔히 ‘백대(百代)가 모두 진나라의 제도를 따랐다’는 말이 회자된다. 건축예술도 예외는 아니어서 모든 시기의 건축은 선진시대에 다져진 기본규범을 벗어난 적이 없다고 한다. 거기에도 중국 민족의 특징인 실천이성 정신이 담겼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 실천이성 정신은 종교로까지 연결된다. “시대 변천과 생활 발전에 따라 변한 중국 석굴예술은 중국 민족이 불교를 수용한 이래 개조·소화하고 벗어나기까지 자신의 형상 방식으로써 반영한다.”
‘아주 오래된 고전작품들이 여전히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건 그 속에 체현된 구조와 심리구조가 상응하기 때문이고 그것은 오랜세월 누적, 침적되어 생긴 것이다.’ 이 메시지는 ‘중국문학 최고의 보물이라는 홍루몽에서 마지막으로 맺어진다. “홍루몽은 마침내 아무리 읽어도 싫증 나지 않는 봉건말기의 백과사전이 되었다. 상층 사대부의 문학이지만 이것이 묘사한 인정세태며 슬픔과 기쁨은 명대의 시민문예가 더할 바 없이 승화된 것이기도 하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2014-12-2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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