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 읽어라, 청춘] <33> 김만중 ‘구운몽’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 읽어라, 청춘] <33> 김만중 ‘구운몽’

입력 2015-01-12 17:48
수정 2015-01-12 18:01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구름처럼 덧없는 인생 중세인의 이상세계 그려 삶의 지향성을 묻다

구운몽은 김만중이 평안도 선천 유배 시절 홀로 계신 어머니를 위로하려 쓴 한글 소설로 전해진다. 김만중은 대사헌·대제학까지 오르며 영화를 누릴 만큼 누렸으나 말년은 경남 남해의 유배지에서 보낸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볼 때 아마도 작가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 입신양명에서 삶의 허무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구운몽은 그러한 삶의 덧없음을 금강경의 ‘공’(空) 사상으로 극복하는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이미지 확대
이 소설은 유교적인 덕목인 입신양명을 이룬 양소유와 욕망을 이룬 뒤의 무상함에서 불교적 깨달음을 얻은 성진을 내세워 당시 사대부의 이상 세계를 그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사회적 차원의 입신양명의 가치와 개인적 차원의 내면적 깨달음을 통일적으로 성취하고자 한 작가의 결실로 볼 수 있다. 그러면서 근심 속에 있을 어머니를 위로하고 자신이 처한 고통스러운 상황을 극복하고자 했을지 모른다.

구운몽의 배경은 당나라 때 형산 연화봉의 한 초암이다. 육관대사의 제자 성진은 스승의 명을 받들어 동정용궁으로 가서 용왕의 환대를 받는다. 성진은 연화봉으로 돌아오는 길에 팔선녀를 만나 속세에 뜻을 두었다가 육관대사에 의해 인간 세상으로 추방된다. 성진은 인간 세상에서 양소유로 태어나 여덟 여인들과 인연을 맺고, 토번과의 전쟁에서 공을 세워 2처 6첩을 모두 맞아들이며 부귀공명을 누린다. 그러나 문득 인생무상을 느껴 여덟 부인에게 작별을 고하자 본래 성진의 모습으로 돌아와 암자에 앉아 있게 된다. 그 순간 꿈을 꾸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후 성진은 불도에 귀의해 많은 이들을 교화시키고 팔선녀와 함께 극락세계로 간다.

성진이 양소유가 돼 현실적인 욕망을 성취하고 양소유가 성진이 돼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은 ‘현실-꿈-현실’의 구조 속에 전개된다. 그런데 다른 몽중계 소설과 다르게 꿈꾸기 전과 꿈을 깬 이후의 성진의 삶은 비현실적이고, 꿈속 양소유의 삶은 현실적이다. 현실의 배경은 천상 세계인 연화봉이고 꿈의 배경은 인간 세계인 당나라다. 이러한 구조는 장자의 꿈에서 ‘장자가 곧 나비’인 것처럼 ‘성진이 곧 양소유’이며 ‘꿈이 곧 현실이며 현실이 곧 꿈’이라는 주제 의식과 연결된다.

이미지 확대
신운선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
신운선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
이러한 전개에서 특이한 점은 성진이 꿈을 꾼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 데 있다. 꿈을 꾼다는 사실을 미리 알 경우 독자는 이야기보다 우위에서 서사를 따라 갈 수밖에 없는데, 그 사실을 모른 채 읽기 때문에 성진이 겪는 현실적인 욕망의 성취와 허망함 등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독자는 성진의 욕망을 따라가며 경험한 모든 것이 한낱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성진처럼 충격을 받게 된다.

구운몽의 뜻과 주인공의 이름에서도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구운몽의 ‘구’(九)는 성진과 팔선녀를 가리키고 ‘운’(雲)은 나타났다 사라지는 구름 같은 인간 삶을 뜻한다. ‘몽’(夢)은 꿈을 뜻하니 구운몽은 ‘아홉 구름의 꿈’, ‘아홉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구름과 같은 꿈(삶)’이라는 의미다. 천상 세계에 있는 성진의 이름 뜻은 ‘참된 성품’이고, 인간 세계에 있는 양소유의 이름 뜻은 ‘잠깐 노닐다’이다. 이 소설의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양소유의 한평생은 ‘잠깐 노니는’ 인간 세상의 삶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삶을 부정하는 데 있는 것 같다. 하지만 21세에 홀로 돼 평생을 아들에게 헌신한 어머니에 극진했던 김만중이 어머니에게 “온갖 삶의 부귀영화와 입신양명은 한갓 꿈 같은 것”이라고 위로했을까? 그럴 리 없을 것이다. 한편 주인공 양소유의 여성 편력이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당시 사대부의 억압된 욕망을 그려 내고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들은 이 책의 특정 부분에 집중해 해석한 경우로, 작품 전체가 구현하려고 한 의미와는 다르다. 김만중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성진의 깨달음인 금강경의 ‘공’ 사상으로 보는 것이 좀 더 옳다. 공 사상은 삶이 허무하다는 것이 아니라 삶을 역설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 구운몽은 삶의 무상감을 극복하기 위한 작가 자신을 포함한 당시 중세인의 이상적인 세계를 그렸다고 볼 수 있다.

김만중이 말하고 싶었던 주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육관대사와 성진의 대사를 유념해 읽을 필요가 있다.

성진에게 출문을 명하면서 “네가 스스로 가고자 할 새 가라 함이니 네가 만일 있고자 하면 누가 능히 가랴 하리요, 네 또 이르되 어디로 가리요 하니 너의 가고자 하는 곳이 너의 갈 곳이라”고 명한다. 그러면서 “마음이 좋지 못하면 비록 산중에 있어도 도를 이루기 어렵고 근본을 잊지 않으면 홍진에 가서도 돌아올 길이 있으니, 네가 만일 돌아오고자 하면 내가 손수 데려올 것이니 의심치 말고 갈지어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모든 것이 자신의 마음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세속의 부귀공명을 꿈꾸는 성진이 갈 곳은 세속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 성진은 죄의 벌로 쫓겨나 양소유로 환생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세계는 성진이 욕망했던 삶이었다. 그러나 그런 욕망은 김만중이 유배지에서 쓸쓸히 죽어 갔듯이 한낱 꿈일 뿐이다.

꿈에서 깨어난 성진이 육관대사에게 “인간 세상에 윤회하는 꿈을 꾸었다”며 “이미 깨달았다”고 말하니 육관대사는 장자의 호접몽과 금강경의 설법을 통해 날카롭게 지적한다. 자아와 외물은 본디 하나여서 기준이 달라지면 인식이 달라지는 법인데, 성진이 현재의 기준으로 양소유의 삶이 진실하지 못했다고 말하니 그것은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의 말이라는 것이다. 아무런 선입견 없이 보아야 참모습이 드러나는데, 현실계와 몽중계를 분별하려는 마음 자체가 이미 무상의 대상에 대한 집착인 것이다. 무엇을 분별하려는 마음 모두 그릇된 지식과 그릇된 집착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진정한 깨달음은 그런 얽매임의 상까지 극복할 때 이루어진다고 설파한다.

결국 육관대사가 성진을 양소유가 되게 했던 궁극적인 목적은 “네 욕망을 성취해 즐겁게 지내라”도, “욕망 성취 후에 무상감이 있으니 추구하지 마라”도 아닌 “그런 욕망 자체에 얽매이지 마라”이다. 욕망이란 것은 성취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욕망이 아니고 성취한 순간 또 다른 욕망을 생기게 하기 때문에 이런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라는 것이다. 비로소 성진(양소유)은 욕망과 이상을 한껏 펼친 후 도달한 무상함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다.

성진과 양소유가 둘이자 하나이듯 현실과 꿈은 다른 듯하면서 다르지 않았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현실에서 꿈으로 나아가게 함과 동시에 꿈에서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현실의 문제 해결을 위해 꿈으로 나아가고 꿈에서 현실의 퍽퍽함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그래서 우리가 성진과 양소유의 삶을 대비해 성찰할 것은 삶이 허무하다는 것이 아니라 허무를 극복하기 위한 근원인 ‘어떤 삶을 추구할 것인가’이며, 그 삶을 ‘어떻게 잘 살아 낼 것인가’의 문제일 것이다.

신운선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

●‘읽어라 청춘’은 격주로 게재됩니다.
2015-01-13 2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설명절 임시공휴일 27일 or 31일
정부와 국민의힘은 설 연휴 전날인 2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기로 결정했다. “내수 경기 진작과 관광 활성화 등 긍정적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한다”며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결정에 일부 반발이 제기됐다. 27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될 경우 많은 기혼 여성들의 명절 가사 노동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는 의견과 함께 내수진작을 위한 임시공휴일은 27일보타 31일이 더 효과적이라는 의견이 있다. 설명절 임시공휴일 27일과 31일 여러분의…
27일이 임시공휴일로 적합하다.
31일이 임시공휴일로 적합하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