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의 연대기/이창익 지음/테오리아/544쪽/2만 5000원
‘미신의 연대기’는 일제강점기에 형성됐던 다양한 미신들을 살핀 책이다. 일제강점기를 탐구의 대상으로 특정한 건 미신이라 불리는 믿음이 특히 자연스럽게 유통되고 소통됐기 때문이다. 수치스럽고 비통한 시기였다는 것 외에도, 일제강점기엔 우리가 모르는 괴기스러운 면이 있었던 듯하다. 당시 나병, 정신지체 등 치료제가 없는 병에 걸린 이들은 남녀의 생식기를 특효약으로 여겼다고 한다. 생명과 생식력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어리고, 산 사람의 것일수록, 그리고 음양교합의 관점에서 성별을 교차해 먹을수록 효험이 있다고 믿었다. 환자들이 산 사람을 공격하기도 했지만 이는 매우 드문 경우였고, 대개는 시체를 노렸다.
섬뜩하게 여겨지겠지만 책엔 더 심한 내용들이 가득하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건 무엇이 미신인가가 아니라 어떤 현상이 왜 미신이라고 불렸는지다. 일제강점기엔 인육포식, 풍장, 구타 치료 같은 특정 현상이 유난히 자주 미신이라 비난받았다. 하지만 각각의 현상들이 지닌 속내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복잡했다. 저자는 “각종 미신 자료에서 도덕과 상식, 과학과 이성 같은 평균적 가치를 침묵시키는 당대 사람들의 공포와 절망과 슬픔을 만나야 했다”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많은 믿음을 지우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며 탄생한 세계인지 감각해 줄 것”을 주문했다.
2021-12-1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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