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플로렌스! 어디선가 책 냄새가 난다

아 플로렌스! 어디선가 책 냄새가 난다

임병선 기자
입력 2023-01-12 10:38
수정 2023-01-1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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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3년 하르트만 셰델의 ‘뉘른베르크 연대기’에 실린 당시 피렌체 전경.단단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이곳에 5만명이 모여 살았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캡처
1493년 하르트만 셰델의 ‘뉘른베르크 연대기’에 실린 당시 피렌체 전경.단단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이곳에 5만명이 모여 살았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캡처
렌체 서점 이야기/ 로스 킹 지음/최파일 옮김/책과 함께/640쪽/ㅎ3만 5000원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중심 도시 피렌체(플로렌스) 지도가 책의 앞부분에 실려 있다. 베키오 다리 근처에 베스파시아노의 집이 표시돼 있고, 그 다리를 건너 시뇨리아 광장을 통과하면 그가 운영했던 서점 자리가 나온다. 지금은 피자 가게가 됐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고전들은 중세 암흑기에 철저히 사라졌는데 어떻게 오늘에까지 전해졌을까? 르네상스를 이끈 피렌체 사람들의 책 사랑 덕분이었다고 이 책은 전한다. 포조 브라촐리니는 수도원들을 샅샅이 뒤져 500년 넘게 구경조차 할 수 없었던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대하여’를 찾았다. 그는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필사해 피렌체로 보냈다. ‘책 사냥꾼’이 늘면서 피렌체는 차츰 도심을 가로지르는 ‘아르노 강변의 아테네’로 변모했다. 교황 사절단은 낙후된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가 이처럼 몰라보게 달라진 것에 경탄했다. 베사리온 추기경은 “책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다. 책은 우리와 함께 살아가며, 우리를 가르치고 위로한다”고 했다.

스위스 역사학자 야코프 크리스토프 부르크하르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명’을 통해 처음 르네상스란 말을 썼다. 그가 바티칸의 도서관에서 읽은 책이 15세기 피렌체 유명인들의 간략한 전기였다. 그 책을 쓴 이가 바로 베스파시아노였다. 이 책은 부르크하르트의 관심을 시각예술에서 책과 도서관의 세계로 이동시켜 고대 저작물의 재발견이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일으킨 원동력이 됐다고 주장했다.

베스트셀러 ‘브루넬레스키의 돔’을 썼으며 역사 연구가인 로스 킹은 피렌체에서 활동했던 지식 파수꾼들의 삶을 통해 르네상스의 탄생 열쇠를 추적했다. 저자는 브라촐리니를 비롯해 피렌체에서 가장 박학다식한 장서가로 통했던 니콜로 니콜리, 르네상스 초기 인문학자 레오나르도 브루니, 학자들의 재정적 후원자 코시모 데 메디치, 그리고 이들의 중심에 있었던 ‘세계 서적상의 왕’ 베스파시아노 다 비스티치가 누볐던 15세기 피렌체를 재현해 냈다.

벌레가 들끓고 먼지와 검댕이 쌓인 서가를 뒤지며 희귀 필사본을 찾던 책 사냥꾼, 고대 그리스어를 라틴어로 옮긴 학자들, 좋은 서체로 필사하던 필경사들, 지면의 빈 곳에 정성스레 금박을 붙이고 장식 그림을 그리는 채식사와 세밀화가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주선하고 감독한 베스파시아노를 ‘살려냈다’. 구텐베르크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 베스파시아노는 1000권이 넘는 책을 제작해 판매했으며 그의 서점은 인문주의자들의 토론과 만남의 장이었다.

에필로그와 감사의 말, 각주와 참고문헌, 색인이 압권이다. 책의 7분의 1정도를 차지한다. 베스파시아노는 “모든 악은 무지에서 생겨난다. 하지만 작가들은 어둠을 몰아내고 세상을 밝게 비춰왔다”고 갈파한다. 그보다 피렌체 인문주의자 프란체스카 페트라르카의 경구가 더 귓가를 맴돈다. “이 망각의 장이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으리라. 어둠이 걷히면 우리의 손자들은 과거의 순수한 광휘를 받으며 다시 걸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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