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아시아 전쟁 위 쌓은 평화…냉전시대 폭력의 지정학

아시아 전쟁 위 쌓은 평화…냉전시대 폭력의 지정학

유용하 기자
유용하 기자
입력 2023-11-10 02:33
업데이트 2023-11-10 02:33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아시아 1945~1990/폴 토머스 체임벌린 지음/김남섭 옮김/이데아/968쪽/5만 5000원
강대국의 지정학/니컬러스 존 스파이크먼 지음/김연지·김태중·모준영·신영환 옮김/글항아리/740쪽/3만 8000원

한국전·베트남전 등 아시아 전선
미소 45년간 원조 80% 쏟아부어
이념 대리전 넘어 종교·민족 대결
작은 국가 세력균형 추 역할 강조


이미지 확대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중 인천항 방파제를 넘는 미국 해병의 모습. 한국전쟁은 냉전 시대 첫 번째 국제전이었으며 많은 사람이 제3차 세계대전의 예행연습이라고 생각했다. 이데아 제공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중 인천항 방파제를 넘는 미국 해병의 모습. 한국전쟁은 냉전 시대 첫 번째 국제전이었으며 많은 사람이 제3차 세계대전의 예행연습이라고 생각했다.
이데아 제공
지리가 국가이익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는 ‘지정학’(Geopolitics)은 유럽에서 민족주의가 고조되고 식민지 쟁탈전이 벌어지던 19세기에 등장했다. 1·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팽창정책의 이론적 배경이 됐다는 오명으로 한동안 ‘문제적 학문’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그렇지만 20세기 후반부터 지정학에 관한 관심이 다시 커졌다. 지정학의 인기 덕분에 자국의 정치적, 외교적, 안보적 목적을 위해 경제적 수단을 활용하는 현상을 분석하는 ‘지경학’, 기술이 국가의 성패를 가른다는 논리의 ‘기정학’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지정학과 관련된 흥미로운 ‘벽돌책’이 잇따라 출간돼 눈길을 끌고 있다.
이미지 확대
미국 컬럼비아대 역사학과 폴 토머스 체임벌린 교수가 쓴 ‘아시아 1945-1990’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cold war) 기간 서구에서는 큰 전쟁이 없었는데 동아시아에서 중동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전역은 왜 참혹한 ‘열전’(hot war)에 시달려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다.

저자는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냉전 국제사 프로젝트’와 ‘국가 안보 문서보관소’가 기밀 해제한 미국, 소련, 중국의 문서, 중앙정보국(CIA) 문서, 비정부기구와 인권단체의 자료와 구술, 목격담 등으로 당시 이야기를 생생하게 재구성한다.
이미지 확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아시아에서 벌어진 전쟁이 공산주의와 관련돼 있다면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인종적, 종교적 성격이 강하다. 1987년 2월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교전 중인 시아파 무슬림 아말 민병대원의 모습. 이데아 제공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아시아에서 벌어진 전쟁이 공산주의와 관련돼 있다면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인종적, 종교적 성격이 강하다. 1987년 2월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교전 중인 시아파 무슬림 아말 민병대원의 모습.
이데아 제공
중국 내전 250만명, 한국전쟁 300만명, 베트남전쟁 400만명, 캄보디아 킬링필드 167만명, 이란·이라크 전쟁 68만명 등 1945년 이후 아시아 지역에서 벌어진 굵직한 전쟁 몇 개만 보더라도 희생자가 엄청나다. 미소로 대변되는 초강대국도 냉전 이후 아시아의 전선에 45년 동안 대외 원조 80%를 쏟아부었고 미군 전사자의 99.9%, 소련군 전사자 95%가 이곳에서 발생했다. 저자는 냉전 시대 아시아 지역 전쟁을 단순히 초강대국의 대리전으로 해석하는 기존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자신들의 전략적 이익뿐 아니라 종교적, 민족적 정체성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엄청난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세계는 대규모 전쟁을 더는 찾아볼 수 없는 ‘장기 평화’의 냉전 시대에 진입했다”는 서구의 역사적 시선은 아시아에 관한 한 완전히 잘못된 평가라고 강조한다.
이미지 확대
그런가 하면 ‘강대국 지정학’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출간된 그야말로 지정학의 살아 있는 고전이다. 이 책은 환태평양 지역과 유럽, 남미 지역 국가들의 지리와 힘의 관계를 분석하고 힘의 관계와 지리의 상호작용을 보여 준다. 저자는 이 책에서 미국은 고립주의가 아닌 늘 다른 대륙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세계 경찰’로서 미국의 역할에 대한 이론적 배경을 제시했다.

단순히 이론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치밀한 분석에 기반한 통찰과 예측을 제시하고 있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집필한 책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다. 2차 세계대전 후 소련에 대항할 수 있도록 독일을 강한 국가로 남겨 두는 것이 미국에 이익이라는 조언이나 일본이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중국과 소련이 서로를 견제하게 될 것, 중국이 아시아 지배 세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다시 봐도 놀랍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세력균형론’은 주변 4강에 끼인 우리에게도 주는 의미가 크다. “세력균형 정책은 원래 강대국을 위한 정책이지만 작은 나라는 누구도 그 나라 영토를 원치 않게 하거나 완충국이나 세력균형의 추로 역할을 할 때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 그의 말은 요즘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다.
유용하 기자
2023-11-10 16면
많이 본 뉴스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 당신의 생각은?
더불어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의 지역화폐를 지급해 내수 경기를 끌어올리는 ‘민생회복지원금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민주당은 빠른 경기 부양을 위해 특별법에 구체적 지원 방법을 담아 지원금을 즉각 집행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국민의힘과 정부는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하는 ‘위헌’이라고 맞서는 상황입니다. 또 지원금이 물가 상승과 재정 적자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지원금 지급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찬성
반대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