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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사임’ 택했던 ‘진리의 수호자’ 지다

‘생전 사임’ 택했던 ‘진리의 수호자’ 지다

류재민 기자
류재민, 안석 기자
입력 2023-01-01 21:44
업데이트 2023-01-02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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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마지막 날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 선종

598년 만에 가톨릭 첫 중도사퇴
정통교리 수호… 보수파엔 영웅
韓과 인연… 김수환 추기경 스승
5일 장례미사… 세계 추모 이어져

프란치스코 교황, 새해 첫 미사
“하느님에게 가는 길 동행을”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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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19일 요한 바오로 2세에 이어 제265대 교황에 선출된 베네딕토 16세가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 발코니에서 수만명의 순례자에게 손을 흔들며 교황으로서 첫 축복을 내리고 있다. 2013년 가톨릭 역사상 598년 만에 중도 사퇴한 그는 ‘명예교황’의 지위에 있다가 지난해 마지막 날 95세로 선종했다. 바티칸 AP 연합뉴스
2005년 4월 19일 요한 바오로 2세에 이어 제265대 교황에 선출된 베네딕토 16세가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 발코니에서 수만명의 순례자에게 손을 흔들며 교황으로서 첫 축복을 내리고 있다. 2013년 가톨릭 역사상 598년 만에 중도 사퇴한 그는 ‘명예교황’의 지위에 있다가 지난해 마지막 날 95세로 선종했다.
바티칸 AP 연합뉴스
2022년 마지막 날 95세로 선종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가톨릭 내 보수파에게는 영웅으로, 진보파에게는 교회 개혁을 거부한 인물로 꼽힌다. 변화의 시기에 교황에 올라 역사에 한 획을 남기고 떠난 그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베네딕토 16세는 2005년 78세의 나이로 제265대 교황직에 올랐다. 클레멘스 12세 이후 275년 만의 역대 최고령 교황에 이름을 올렸으나 재위 8년 만인 2013년 2월 건강상의 이유로 물러났다. 가톨릭 역사상 교황의 중도 사퇴는 598년 만이었다.

요제프 라칭거라는 본명으로 1927년 독일에서 태어나 성장한 그는 젊은 시절 ‘제2차 바티칸공의회’ 당시엔 가톨릭 교회 개혁을 앞장서 주장했을 정도로 진보적인 신학자였다. 그러나 1960년대 말 유럽을 휩쓴 ‘68혁명’을 계기로 보수파로 돌아섰다.

교황청에 1981년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입성한 그는 전통적인 신학관으로 교리 수호에 강고한 입장을 견지했다. 2005년 4월 취임 미사에서 “저의 진정한 운영 계획은 주님께서 역사의 이 시점에서 교회를 이끄시도록 온 교회와 더불어 주님의 말씀과 뜻을 경청하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원칙을 강조했다. 세상이 급변하고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 시기에 교회의 권위자로서 지켜야 할 가치들을 엄격히 강조해 ‘진리의 수호자’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베네딕토 16세의 엄격함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슬람 및 가톨릭 내 진보 진영과 대립각을 세웠고, 어린이 성추행 사제 문제와 교황청 내부 부패 청산에는 엄격한 잣대를 대지 못해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2012년 교황청 내부 편지와 문서가 유출되는 등 곤란을 겪었고 결국 이듬해 자진 사임했다. 퇴임 후엔 ‘명예교황’으로서 바티칸 내 ‘교회의 어머니 수도원’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냈다.

완고한 이미지의 그는 고양이를 좋아하고 피아노 연주와 맥주를 즐긴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런 인간적인 면모는 연극과 영화로 제작된 ‘두 교황’에서 묘사되기도 했다. 임기 중에 신었던 ‘빨간 구두’는 패셔니스타로서의 모습을 상징한다. 그는 2007년 패션지 에스콰이어가 선정한 ‘베스트 드레서’로 선정됐을 정도로 멋쟁이 교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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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수정(오른쪽) 추기경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가 1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에 마련된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분향소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다. 서울 연합뉴스
염수정(오른쪽) 추기경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가 1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에 마련된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분향소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다.
서울 연합뉴스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김수환(1922~2009) 추기경은 베네딕토 16세가 독일 뮌스터대에 교수로 발령받아 교회 쇄신에 관한 강의를 개설했을 때 수강생이었다. 재임 시절 8명의 새로운 한국인 주교를 임명했다.

2007년 2월 15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교황청을 방문했을 때 “제가 한반도와 주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기도드리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말씀해 주시기 바란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50여 년에 걸친 분단의 결과로 고통받아 왔다. 이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도록 기도드리겠다”고 하는 등 분단의 아픔에 공감하며 한반도 평화를 염원했다.

세계 각지에서 추모가 이어지는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1일 새해 첫 미사에서 “사랑하는 우리의 ‘명예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하느님에게 가는 길에 동행해 달라”고 기도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도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미사에서 “우리 시대 평화의 사도이고 영적인 스승이며 지도자”라고 추모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 주셨고, 한반도 평화에 앞장서셨다. ‘주께서 내게 더 기도에 힘쓰라며 산에 오르라 하셨다’던 교황님의 마지막 삼종기도 말씀은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명동성당은 이날 베네딕토 16세를 기리는 분향소를 마련했고, 주한교황대사관도 2일 공식 분향소를 설치한다. 염수정 추기경과 이용훈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등으로 구성된 대표단은 오는 5일 바티칸에서 열리는 장례 미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류재민·안석 기자
2023-01-02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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