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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철의 영화만화경] ‘신과 인간’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신과 인간’

입력 2012-01-20 00:00
업데이트 2012-01-20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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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그림자를 맞이하는 수도사들의 슬픔과 숭고함

1996년 알제리에서 일어난 ‘프랑스인 수도사 납치 사건’을 영화화했다. 크리스마스를 얼마 앞둔 어느 날 산골 마을 티브히린에 위치한 수도원에도 내전의 긴박한 상황이 전해진다. 정부군의 보호 제안과 출국 요청에도 수도사들은 소명에 따라 도착한 땅을 떠나지 않기로 결의한다. 이듬해 3월 26일 새벽 1시 무장 괴한들이 수도원에 침입해 수도사들을 납치한다. 프랑스 정부와의 협상 과정에서 인질범은 일곱 명의 인질을 전부 살해했고, 그들의 죽음은 양국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신과 인간’(원제: Des hommes et des dieux)은 납치되기 전까지 수도사들이 수도원에서 보낸 마지막 시간을 기록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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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와 연출을 병행해온 자비에 보부아는 근래 비평적인 성공을 거둔 프랑스 감독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 감독 데뷔 이후 여러 영화제에서 거푸 수상한 그는 ‘신과 인간’으로 칸영화제 그랑프리의 영예를 안았다. 종교 영화의 면모 때문에 전작들과 동떨어져 보이지만, ‘신과 인간’은 ‘네가 죽을 것을 잊지 마라’, ‘신참 경찰’에서 이미 다룬 ‘피할 수 없는 죽음과 선택’의 문제를 재차 화두로 삼은 작품이다. 보부아는 프랑스와 알제리,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정치, 문화, 역사적 갈등 같은 민감한 이슈를 기점으로 ‘사랑, 평화, 자유’라는 보편적 주제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수난의 비극을 다루고 있으나 ‘신과 인간’은 아우성이 들리지 않는 이상한 수난극이다. 인물들이 겪는 엄청난 시련과 눈물겨운 희생의 드라마는 애초에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수도사들은 생존의 위협에 직면해 주어진 과업을 묵묵히 수행할 뿐이며, 느리고 조용하게 진행되는 영화 또한 수도원의 일상 바깥으로 좀체 벗어나지 않는다.

공포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수도원의 일상이 버티기 힘겹게 변하고, 그럴 때마다 수도사들은 기도, 찬송, 부엌일, 정원 가꾸기, 환자와 이웃 돌보기에 정진하는 방식으로 폭력에 저항한다. 그렇다고 영화가 각자의 절규하는 내면을 외면하는 건 아니다. 일기와 편지를 쓰는 동안, 노동하다 문득 생각에 잠기는 동안, 깊은 밤에 어두운 벽을 바라보는 동안 그들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구한다. 은총을 전하러 온 천사가 떠 있어야 할 자리에 전투용 헬기를 배치하는 것으로 영화는 수도사들의 절박함을 표현한다. 공포에 맞서 그들은 찬송의 소리를 더욱 높인다. 잔혹할 정도로 선명한 그 이미지에는 슬픔과 숭고함이 공존한다.

‘신과 인간’은 결국 어떻게 죽느냐에 관한 영화다. 중요한 건 인간으로서 삶을 어떻게 마치는가이며, 그것은 곧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를 역으로 결정짓는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백미는 납치 전날 밤의 만찬 장면에 있다. 곧 닥칠 죽음의 그림자를 예감한 듯 수도사들은 마지막 만찬 자리에 둘러앉는다. ‘백조의 호수’를 듣고 와인을 기울이며 그들은 무언의 인사를 나눈다. 클로즈업으로 포착된 인물들은 저마다 회한 어린 표정으로 믿음, 기쁨, 불안, 슬픔, 고통의 흔적을 쏟아낸다. 특히 노 수도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는 순간에는 현장에 함께 있는 듯 감정을 억누르기가 어렵다. 영화가 ‘얼굴의 춤’이 빚는 예술임을 절감하게 하는 장면이라 하겠다. 19일 개봉.

영화평론가

2012-01-2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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