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밥상]한국 여성들의 맛, 나물

[엄마밥상]한국 여성들의 맛, 나물

입력 2010-03-21 00:00
수정 2010-03-21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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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 얼음이 채 녹기도 전에 냇가나 둑에는 나물이 돋는다. 나물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되었고 먹는 방법도 다양하다. 산이나 들에서 자라는 식물 중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을 캐어서 생으로 먹거나 데쳐서 간장, 된장, 기름 등에 무치거나 볶은 음식을 가리킨다. 주로 봄에 나는 산나물이나 들나물을 먹지만 가을에는 채집한 채소를 말려서 겨우내 두었다가 정월대보름을 전후하여 물에 불려서 삶아 먹는 묵은 나물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나물은 먹을 수 있는 식물을 보존하는 하나의 방법이면서 동시에 채소를 갈무리하여 먹는 조리법의 하나이다. 나물이라는 말은 남새(채소)와 물(物)이라는 한자어가 합성되어 만들어진 말로 채소로 만든 음식을 가리킨다. 이런 의미에서 소채와 나물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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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문헌을 살펴보면 사람들에게 나물은 밥을 먹을 때 없어서는 안 되는 반찬이었다. 더욱이 계절마다 산과 들에서 피어오르는 식물의 순이나 잎 혹은 줄기로 만든 나물은 먹을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 재료였다. 조선후기 정학유(1787~1859)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농가월령가》에는 각 시기별로 먹는 나물의 이름이 담긴 글귀가 나온다. 정월에는 “움파와 미나리를 무엄에 곁들이면 보기에 신선하여 오신채를 부러워하랴. 묵은 산채 삶아내니 육미를 바꿀소냐”, 이월에는 “산채는 일렀으니 들나물 캐어 먹세. 고들빼기 씀바귀며 소로쟁이 물쑥이라. 달래김치 냉이국은 비위를 깨치나니”, 삼월에는 “울밑에 호박이요, 처맛가에 박 심고 담 근처에 동아 심어 가자하여 올려보세. 무·배추·아욱·상추·고추·가지·파·마늘을 색색이 분별하여 빈 땅 없이 심어놓고, 갯버들 베어다가 개바자 둘러막아 닭, 개를 방비하면 자연히 무성하리. 외밭은 따로 하여 거름을 많이 하소. 농가의 여름반찬 이 밖에 또 있는가. 전산에 비가 개니 살진 향채 캐오리라. 삽주·두름·고사리며, 고비·도랏·어아리를 일분은 엮어 달고 이분은 무쳐 먹세”라고 했다.

또, 조선시대 선비들은 나물을 절의의 음식으로 꼽아 그 속에 선비들의 검약한 정신을 집어넣기까지 하였다. 고사리는 ‘오매초(烏昧草)’라고 불리었는데, 중국 송나라 때 범중엄이 강회 지역을 순회하고 궁중으로 돌아와서 오매초를 황제에게 올리면서 “이것이 지금 가난한 백성들이 먹고 사는 산채이니 관리들에게 보여서 사치를 억제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권력과 부를 상징하는 육식에 비해 나물은 권력을 가지지 않은 사람과 가난한 자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여겨 근검하고 질박한 선비의 삶을 비유할 때도 나물이 쓰였다. 또한 제사음식에서도 빠질 수 없는 음식이라면 나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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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에게 올리는 제사인 석전제(釋奠祭) 중에서 지금은 행하지 않지만, 예전에는 석채(釋菜)라는 것이 있었다. 본래 석전제는 대제(大祭)·석채(釋菜)·상정(上丁)·정제(丁祭)로 구분되는데, 보통 석전은 소나 양을 제물로 쓰면서 음악을 연주하며 지낸다. 이에 배해 석채는 나물만을 제물로 쓰고 음악을 연주하지 않는다. 곧 석채는 간소하게 차린 공자의 제사를 가리킨다. 하지만 조선왕실이 지낸 조상 제사에는 나물이 제물 중의 하나에 들었다.

예로부터 나물을 캐는 일에 남성들은 결코 나서지 않았다. 세계 어디를 가도 지난 20세기까지 나물이나 과실을 채집하는 일은 여성들의 몫이었다. 나물은 한국의 여성들이 몸소 만들어낸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산과 들에 나는 식물들 중에는 어린순들은 대부분 나물이나 약용으로 사용할 수 있으면 독초도 여러 가지 나물과 함께 발효를 시켜 효소가 만들어지면 약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약으로 쓰이거나 건강에 도움을 주는 식물들은 대개 줄기나 잎자루가 붉은색을 띠는 것들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헛개나무의 연한 나뭇잎은 데쳐서 쌈으로 먹고, 두릅나무 새순은 데쳐 초장을 찍어 먹는다. 그리고 참죽나물은 장아찌를 담거나 줄기는 말려서 육수를 대신하여 국물을 끓여 먹기도 한다. 이른 봄 아직 땅이 얼어 있을 때 가장 먼저 새봄을 알리며 돋아나는 부지런한 부지깽이 나물은 새순을 살짝 데쳐서 갖은 양념을 하여 먹는데 씹는 맛이 부드럽고 향기가 좋다. 쑥처럼 줄기에 마디가 있는 식물들은 잎이나 줄기에 털이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나물들은 보통 성장이 빠르고 억세 날로 먹으면 목에 걸리므로 반드시 데쳐서 숨을 죽인 후 먹어야 한다.

요즈음 나물은 건강을 지켜주는 식이요법에 유용한 음식으로 소비되고 있다. 음력 정월대보름에 먹는 묵은 나물이나 나물 정식, 그리고 비빔밥이 몸에 좋은 웰빙식으로 인기를 누리고 세계인들의 입맛도 사로잡고 있으니 나물은 우리의 식탁을 빛내 줄 음식으로서 충분한 자격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양한 봄나물로 우리의 입맛을 돋우어 활기찬 봄을 맞이해 보자.

글·사진_ 이미경 요리연구가 http://blog.naver.com/poutian

TIP

사계절나물


: 1) 봄_ 두릅, 오가피순, 참나물, 취나물, 두릅, 씀바귀, 냉이, 돌미나리, 달래, 돌나물, 물쑥, 쑥, 유채, 보리순,

원추리나물, 풋마늘대, 봄동, 방풍나물, 머위 ,고비, 고사리, 숙주, 돌나물, 부추, 참죽나물, 고들빼기, 죽순,

홋잎나물

2) 여름_ 고구마순, 깻잎나물, 고춧잎나물, 오이, 호박, 상추, 열무, 마늘쫑, 곰취, 쑥갓, 얼갈이, 가지,

머위대나물, 고수, 부추

3) 가을_ 도라지, 더덕, 무, 배추나물, 실파, 대파

4) 겨울_ 묵은나물(대보름 나물) - 호박오가리, 고사리, 도라지, 토란대, 시래기, 무나물, 취나물, 아주까리잎, 가지오가리, 시금치나물, 콩나물, 무말랭이, 생미역, 톳나물

■나물 손질의 주의점

1. 씻기 전 다듬는다. 다듬지 않고 씻으면 여러 번 씻어야 해 나물이 상하기 쉽다.

2. 나물은 그릇에 물을 받아 살살 씻는다. 흐르는 물에 씻으면 상하고 풋내가 난다.

3. 생으로 먹을 때는 먹기 직전 양념장을 넣고 버무려야 아삭하고 풋내가 나지 않는다.

4. 데쳐서 먹을 때는 나물의 특징에 따라서 데치는 시간을 달리한다. 여린 잎은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찬물에

빨리 헹구고, 뿌리나 굵은 줄기는 뿌리가 부드러울 정도로 데친다(데칠 때 끓는 물에 소금을 넣으면

나물의 색·향·미를 살릴 수 있다).

5. 데친 나물을 찬물에 1~2회 헹구어 체에 건져 놓는다.

6. 데친 나물을 양념할 때도 먹기 직전 손으로 나물에 양념이 배도록 살살 무쳐야 맛있다.

제철 재료를 이용한 요리_ 미나리조갯살무침

: 봄 조개, 가을 낙지라고 한다. 미나리도 봄이 맛있고 조개도 봄이 맛있으니 궁합이 딱이다.

게다가 새콤달콤하니 조개와 미나리 맛이 더 좋다.

■재료(2인분): 조갯살(1컵), 미나리(1줌), 양파(1/2개), 통깨(약간)

양념장: 고추장 2큰술, 고춧가루 1/2큰술, 다진 마늘 1/2큰술, 다진 파 1큰술,

식초 2큰술, 설탕 1큰술, 소금(약간)

■만드는 법

1. 조갯살은 끓는 물에 데친다.

2. 미나리는 다듬어 먹기 좋은 길이로 썰고 양파는 채 썬다.

3. 조갯살에 양념장을 넣어 무친다.

4. 미나리와 양파를 넣어 살짝 버무려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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