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두다 | 상담 9단 할머니

거두다 | 상담 9단 할머니

입력 2010-11-28 00:00
업데이트 2010-11-28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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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매일 행복을 줍는다 - 심리상담사 양순자

글_ 김상미 시인·사진제공_ 열음사

서른일곱 살 사형수 교화위원

우리에게 《인생 9단》《인생이 묻는다 내가 답한다》로 잘 알려진 양순자 선생. 그분을 뵈려 일산으로 향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토요일 오후. 선생이 운영하는 ‘양순자심리상담소’문을 두드렸다. 아담한 실내. 깔끔하게 정돈된, 앤티크한 가구 몇 개, 그리고 선생이 가장 아끼는 카프카의 프라하 밤풍경 사진이 걸려 있는 단아하고 검소한 책상….

오랜만에 뵙는 선생의 모습은 하나도 변함이 없었다. 칠순을 살짝 넘긴 연세에도 저렇듯 명증하고 차분할 수 있다니, 참으로 신기했다. 게다가 올해 선생은 대장암 수술까지 받았다. 그런데도 그런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건강한 사람보다 더 맑고 더 젊어지신 것 같다. 삶을 마음에서 자유롭게 풀어놓으면 저렇듯 해맑아지는 것일까?

양순자 선생은 서른일곱 젊은 나이에 서울구치소 사형수 교화위원이 되었다. 그 당시 선생은 삶의 고비를 맞아 힘겹고 고통스러워 죽고만 싶었다. 그럴 때 문득, 무한정 삶이 남아 있는 내가 이토록 죽고 싶은데 죽음을 코앞에 남겨두고 매일매일 카운트다운을 기다리는 사형수들의 심정은 어떨까? 무척 궁금해 자진해서 구치소 교화위원이 되었다. 사형수 교화위원이란 사형을 앞둔 사형수들의 정신적 보호자(일대일)가 되어 집행 마지막 날까지 마음의 평화를 가질 수 있도록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보살펴주는 또 하나의 가족이 되어주는 일이다. 그래서일까. 선생이 발음하는 ‘삶’이나 ‘인생’이라는 단어에는 그동안 선생이 만난 무수한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온몸으로 맛보고, 느끼고, 애달파하고, 눈물지으며 보듬어주었을 큰마음 큰사랑이 녹아 있었다. 진심으로 사랑을 주고받음으로써 그들에게서 진짜 삶의 의미를 배우고 싶었다는 선생의 소박하지만 큰 철학처럼.

그렇게 시작한 교화위원 활동이 어느새 30년을 훌쩍 넘겼다. 그동안 만나고 이별한 무수한 수인들을 통해 배운 게 있다면 그래도 삶은 아름답고, 끝까지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것이라며 환하게 웃는 선생의 모습에서 참 좋은 어른의 공기를 쐬는 듯한 상쾌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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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따뜻한 손

살다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누구나 다 사형수 상담을 자청하지는 않는다.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남이 가려하지 않는 고단한 길을, 젊은 나이에 자원한 사람. 빛보다 어둠이 더 많았을 그 길에서 깨우친 ‘삶’이라는 은총. 선생은 그 은총을 ‘인생 숙제’를 푸는 열쇠라고 표현했다.

그 은총을 놓칠세라 선생의 말씀 하나하나에 두 귀를 바짝 모았다. 활달한 음성에 실어 들려주는 인생에 대한 당당하고 명쾌한 사례와 꾸밈없는 명민함으로 이겨낸 경험들이 참으로 듣기 좋고 유익했다. 할머니 연세임에도 막힘없이 건강하고 자유롭게 흘러다니는 의식세계가 참으로 놀랍고 유쾌하고 정겨웠다.

그러면서 아, 이런 게 ‘상담’의 기본자세이구나. 선생이 다른 이들의 얘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었듯 내가 지금 선생의 말씀에 귀 기울여 듣는 것. 그러면서 상대방의 심중의 핵심을 알아내고, 그 핵심에 진심을 기울여 함께 길을 만들어내는 것. 의사소통에 햇볕을 쬐는 것. 이런 게 진정한 상담이며 소통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의 상담철학 1호는 일단 두 사람이 만나서 한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상담자는 자기 검열 없이 마음을 열어놓아야 합니다. 상대의 고민 속으로만 들어가지 않습니다. 내 고민도 내놓고 이야기합니다. 나는 이래라 저래라 훈수 없이 그 사람 스스로 바둑을 두게 합니다.”

모든 걸 다 들어주면서 스스로 자신을 깨닫게 만들어 주는 힘! 선생에게는 그런 멋진 힘이 있었다. 나는 선생의 손을 가만히 잡아보았다. 아주 따뜻했다. 그 손 안에 녹아 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아픈 삶들이 파도처럼 출렁이며 내게로 흘러오는 듯했다. 선생을 통해 그동안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상담과 봉사에 대한 고정관념을 저 멀리 던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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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는… 한 알의 씨앗이 땅 속에서 자기를 분해하는 작업입니다. 씨앗이 죽기를 거부하면 떡잎은 세상에 나올 수가 없습니다. 희생이 없는 봉사는 봉사가 아닙니다.”

희생은 곧 사랑이라는 말. ‘인생 숙제’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빠져서도 안 되는 그 ‘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하고 또한 배우는 사람으로 살아온 양순자 선생. 사형수들을 만나면서 무엇이 정말 고통스러운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며 “풀어서 풀릴 수 있는 것은 괴로움이 아니요, 참고 기다려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고통이 아니다. 사형수들에게는 이런 희망이 없었다”며 선생은 금당사건 사형수인 박철옹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세 사람을 살해한 잔인무도한 살인범인 그가 선생과의 상담 후 180도 달라진 때문이다.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장기 기증까지 하고 또 자신의 이야기를 참회록(《내 목에 밧줄이 놓이기 전에》)으로 남겨 그 인세를 심장판막증 어린이를 위해 써달라고 했다. 그리곤 마지막 형이 집행될 때까지 편하고 밝고 환한 모습으로 떠나갔기 때문이다. 선생은 아직도 그 일이 어제인 양 가슴 두근거린다고 했다.

정말 사형집행일을 받아놓은 삶을 삶이라 할 수 있을까? 매일매일 죽음을 기다리며 사는, 그 피 말리는 고통을 누가 감히 안다고,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 그들에게 선생은 말벗이 되고 위안이 되어 주었으니 그보다 더 큰 봉사가 어디 있으랴. 거기다 그들의 가족들을 만나 위로하고, 죄인이 편안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도록 아낌없이 돌보셨다니…. 그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든 내가 능력 있고 여유 있을 때 절실하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나거든 계산하지 말고 도와줘라”는 선생의 아름다운 철학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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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9단 할머니

지금은 구치소나 교도소 외에도 군대나 선생의 책을 읽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상담도 하고 있다며, 이제는 ‘인생 9단’이 아니라 ‘상담 9단 할머니’라며 환하게 웃음 짓는 양순자 선생. 그 모습이 참으로 당당하고 젊다. 그만큼 선생이 말하는 ‘상담’ 이란 말 속에는 사랑과 지혜, 희망이 함께 살아 숨쉬고, 함께 환호하며 잘 놀고 있기 때문이리라. 선생이 가장 많이 닮고 싶어하고 존경하는 호 아저씨(호치민)의 마음세계처럼.

그러면서 선생은 또 다른 잊을 수 없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천애고아로 태어나 소년원부터 시작, 교도소에만 살다 출소 후 사회적응이 힘들어 고통받던 한 가여운 남자의 이야기. 선생보다 여섯 살밖에 어리지 않았던 그가 출소하면서 선생에게 자신의 어머니가 되어 달라고 했을 때, 선생은 두말 않고 그렇게 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날마다 하루 일과가 끝날 쯤이면 그 남자가 전화기를 통해 ‘어머니!’하고 부르는 소리를 들어주었다는 이야기. 얼마나 ‘어머니’란 말이 사무치게 그리웠으면 매일 하루 일과가 끝난 시각이 되면 전화기를 들고 선생을 향해 ‘어머니’라고 부르고 또 불렀을까!

“나는 그렇게 매일 그이의 어머니가 되었다. 수화기만 들고 어머니인 양 있어주면 되었다.”는 선생의 말씀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그런 그를 어머니가 아이를 품듯 그렇게 말없이 품어 안은 선생을 향해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 이런 분이 있기에 소외되고 그늘진 곳에도 빛이, 희망이, 진정한 소통이 살아 숨쉴 수 있고 아직도 세상이 살만한 곳이 되는 것이구나를 기쁘게 실감했다.

누구든 그 사람이 도움을 청하면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이해해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면 그게 바로 ‘인생 숙제’를 푸는 열쇠가 된다는 선생의 말씀. 두고두고 힘들 때마다 꺼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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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사방 천지에 널려 있다. /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다에서 조약돌 줍듯 바로 내 발 아래에 있다. / 행복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매일 그 행복을 줍는다.”

(선생의 책 《인생이 묻는다 내가 답한다》 중에서)

오늘, 이렇게 비 쏟아지는 여름 오후, 양순자 선생을 만나 뵐 수 있었던 것. 그것이 내게는 큰 배움이며 커다란 행복이 되었듯이!

양순자·심리상담사. 1940년 전남 나주 출생. 서울구치소 교화위원으로 30년간 사형수들을 상담했고, 영암군청 사회복지과 상담실장으로 일했으며, 법무부 교정대상(박애상), 국무총리 인권옹호상, 법무부 장관상등을 수상했다. 안양교도소 정신교육 강사, 군부대 강사 활동을 하면서 양순자심리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인생 9단》《인생이 묻는다 내가 답한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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