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이 삼촌’에서 ‘권 반장’까지

‘오중이 삼촌’에서 ‘권 반장’까지

입력 2010-07-11 00:00
업데이트 2010-07-11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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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모’ 회장으로 8년째 봉사활동 펼치고 있는 탤런트 권오중

초여름의 어느 주말, 탤런트 권오중 씨(39세)를 만난 곳은 경기도 포천의 장애인공동생활가정 ‘낮은 자의 집’이었다. 그날은 그가 회장으로 있는 ‘천사를 돕는 사람들의 모임(천사모, www.1004mo.or.kr)’ 정기봉사가 있는 날이었다. 맨발에 슬리퍼 차림으로 우리를 맞는 그를 본 순간 ‘그래도 연예인인데’ 하는 기대는 깨졌다. “자, 다음 목욕할 사람!”을 외치는 그를 ‘연예인 권오중’으로 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곳엔 ‘오중이 삼촌’ ‘오중이 오빠’만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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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막을 내린 드라마 <살맛납니다>를 제외하고는 모두 총각 역할만 해왔지만, 사실 그는 여섯 살 연상의 부인과 결혼해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둔 학부형이다. 2001년 아들 혁진이가 희귀난치병 판정을 받았을 때를 그는 잊지 못한다. 아이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것이 그를 더 고통스럽게 했다.

“자기 아이가 아픈데 남의 아이 부모에게 위로를 건넨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예요. 그런데도 같은 병실은 물론이고 다른 병실에서도 찾아와 걱정 말라고, 괜찮을 거라고 기도를 해주시더라고요.” 그들의 진심어린 한마디가 그에게 ‘생명의 빛’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기적처럼 마지막 검사에서 아이는 정상 판정을 받았다. 그때 그는 다짐했다. ‘내가 받았던 것처럼, 그분들에게 힘이 되는 삶을 살겠다’고.

운명이었을까. 그때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가 남의 사무실에 책상 하나를 빌려 막 문을 연 상태였다. 그는 자청해서 홍보대사를 맡았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고 보니, 희귀난치성질환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너무 적었다. 그래서 2002년 7월 22일 ‘천사모’를 만들어 활동을 시작했고, 어느새 8년이 되었다. “노처녀 회원이 많아져서 걱정이에요. 빨리 시집가야 되는데… 이렇게 점점 부모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다니까요.”(웃음) 후원금 모집부터 일일호프, 자선음악회까지 천사모의 크고 작은 활동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쳐 이루어진다. 궂은 일, 힘든 일일수록 그가 먼저 나선다. “회원 대부분이 직장인인데 누굴 시켜요. 자유직업인인 제가 해야죠.”(웃음)

천사모는 물론이고 ‘희망의 러브하우스’ 도배 봉사부터 ‘사랑의 열매’ 등 각종 단체의 홍보대사까지 그의 활동은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다.

그런데 그는 주는 것보다 자신이 받는 것이 훨씬 더 많단다. “요즘 힘들다는 말 많이 하잖아요. 야근이 많아 죽겠어, 직장상사 때문에 못 살겠어, 출퇴근길이 너무 힘들어. 그런데 희귀난치병 환우의 부모님들은요, 내 아들딸이 그런 걸 해보는 게 평생소원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제가 힘들다고 할 수 있겠어요?”

그에게 봉사란 “더불어 함께하는 것”이다. “뭔가 해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가가면 그분들도 부담스러워하세요. 그 안에서 편안하게 어울리면 그분들도 기뻐하시고 나도 즐거워져서 오래할 수 있어요.” 그는 이 즐거움을 더 많은 이들과 함께하고 싶다. “절 보러 왔든, 놀러 왔든 동기는 중요하지 않아요. 이렇게 한번 같이 봉사해보는 것만으로도, 먼 훗날 또 봉사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고 생각해요.” 그는 무조건 돕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에 2007년엔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땄다.

봉사 현장에서 ‘오중이 삼촌’으로 통한다면, 촬영 현장에서 그는 ‘권 반장’으로 통한다. 잠깐 쉬는 시간에 온 촬영장을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줍는가 하면, 촬영이 끝나면 한쪽에서 조명기기를 날라주고 있고, 밥 때가 되었는데 안 보인다 싶으면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밥을 퍼주고 있단다. 스태프들만 가는 MT에 그의 가족이 초대되었다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작은 것들이 함께 일하는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문다고 생각해요. 내가 조금만 움직이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데, 별거 아니잖아요.”

그는 스스로를 “별 세 개 반짜리 배우”라고 말한다. “연예인으로 뻗어나가기에는 조금 부족하고, 일반인으로 살기에는 무료한” 별점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아니, 그는 아직도 자신이 연예인 같지 않단다. 1994년 데뷔해 15년이 넘게 연예인으로 살아왔으면서 말이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그가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이웃집 오빠 같고 옆집 삼촌 같은 인간적인 모습이 알게 모르게 연기에 녹아 전달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리라.

봉사활동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 천사모 봉사팀장이 모는 소형차에 회원들과 함께 탄 권오중 씨가 한마디 한다. “우리, 이러다가 천사를 사칭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소개되는 건 아니겠지?”(웃음)

글 이미현 기자 | 사진 한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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