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군인이란다

엄마는 군인이란다

입력 2010-10-31 00:00
업데이트 2010-10-31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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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 해나야. 이제 경우 400일이 지난 생후 14개월의 네가 이 편지를 읽기까지는 참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 아직 어린 네게 이 편지를 쓰는 이유는 출산 이후 생긴 엄마의 몹쓸 건망증과 군 생활을 시작하면서 몸에 밴 수양록 쓰기 덕분이란다. 단풍하사 계급장을 달고 빼곡히 써내려갔던 수양록이 1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엄마의 소중한 군 생활의 역사로 남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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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군인이란다. 너를 가진 기쁨에 클래식을 들으며 태교를 하는 대신 엄마는 후보생들의 함성 소리와 경례구호, 전투화 소리를 들으며 움찔 놀라는 너를 쓸어내리곤 했단다. 원피스형의 임신부복을 입고도 이동하는 후보생들의 제식동작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벼락같이 호통을 치고 얼차려를 줬단다. 그러고 나서 단단해진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엄마 화낸 거 아니에요. 엄마는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어서 언니 오빠들 잘하라고 가르치는 거예요. 놀라지 마세요” 했지. 이렇게 어느 구석에서 혼잣말을 하는 내 모습을 누군가 보았다면 참으로 해괴하다 했을 거야. 그런 가운데서도 잘 자라주는 네가 엄마는 너무도 고마웠단다.

한여름에 태어난 너를 가을이 끝나기도 전에 떼어놓고 다시 출근을 했지. 종일 사격교육이라도 있는 날이면 젖먹이 어린 너는 엄마 품이 그리워 울고, 엄마는 딱딱해진 젖을 화장실에서 짜내며 마음으로 울었단다. 그래도 할머니 품에서 흔한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잘 자라주는 것이 감사하기만 했는데…. 6개월 즈음 네가 가와사키병과 라이증후군이라는 이름도 기억하기 어려운 병으로 양팔, 양다리에 링거를 꽂고 스무 밤이 넘도록 입원했을 때는, 일한다는 핑계로 종일 너를 살갑게 안아주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해 너를 내려놓지도 못하고 밤새 울었단다.

지금도 간수치가 높아져 고개도 들지 못하던 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구나. 정말 위험한 순간까지 갔었지만 너는 다시 햇살 같은 웃음을 보이며 여느 아이들과 같은 사고뭉치 꼬맹이로 돌아와 주었다. 안는 것조차 조심스럽던 3킬로그램의 자그마한 아기였던 너는 볼 살이 통통하게 오른 12킬로그램의 우량아로 자라났다. 하지만 출근하는 엄마에게 가지 말라고 떼를 쓰다가도 금세 포기하고 할머니 등에 업혀 서툰 ‘빠이빠이’를 하는 너를 보고 가슴이 시린 나는 여전히 초보 엄마구나.

엄마는 한 달에 사오 일도 보기 힘든, 볼 때마다 더 까맣게 변한 아빠를 네가 낯설어할까 봐 마음 졸인단다. 오랜만에 만난 딸아이가 선뜻 안겨오지 않는 것을 서운해 하지 않을까 아빠 표정을 살피게 되는 엄마는 아직 서툰 엄마인가 보다. 군복 입은 군인 아저씨만 보면 “아빠! 아빠!” 하고, 배꼽인사 대신 경례부터 배운 너는 영락없이 군인의 딸이다.

아빠는 2주째 집에 오지 못했구나. 땀에 전 군복을 입고 어느 산을 오르고 있겠지. 앞으로 아빠가 너를 볼 수 있는 시간은 더 줄어들지 모른다. 부임지를 옮길 때마다 아빠는, 네가 처음 걸음을 떼던 순간을 보지 못했듯이, 너의 생일, 매년 돌아오는 명절, 어쩌면 너의 첫 입학식과 졸업식에도 함께하지 못할지 몰라. 하지만 너를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기 바란다. 언젠가는 군복 입은 엄마, 아빠를 자랑스럽게 여겨주리라 믿는다.

만약 이 편지를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서운함과 아쉬움이 남아 있다면 크게 한바탕 웃고 훌훌 털어내 주렴. 언젠가 엄마와 인생을 논하게 될 미래의 내 딸에게 이 편지를 쓴다.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보물로 찾아와줘서 고맙구나. 사.랑.한.다.

장승아_ 특전사에서 12년째 근무 중인 당당한 대한민국의 여군입니다. 현재는 특수전교육단에서 학점담당관을 맡고 있습니다. 남편은 특전사 3여단에서 중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편지의 주인공인 딸 해나는 건강하게 자라 얼마 전 두 돌을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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