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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의 시시콜콜 예술동네] ‘색채의 연금술사-루오’전

[정준모의 시시콜콜 예술동네] ‘색채의 연금술사-루오’전

입력 2010-01-01 00:00
업데이트 2010-01-01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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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움이 판치는 세상 묵직한 붓터치 빛 발하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시대를 지나 이제 서서히 과소비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이런 과소비는 문화에서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물론 문화적인 소비가 증가한다는 것은 어쩌면 바람직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일부 계층은 남과 구별하기 위해, 즉 다른 사람이라는 우월감을 얻으려고 명품이라는 이름의 사치품을 사듯 문화를 소비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은 작품보다는 작가의 이름이나 어느 미술관 소장품인가, 공연에서는 좌석등급을 더 중시한다. 이들은 대개 스스로 보고 느끼기보다 전문 안내원의 설명을 통해 자신의 감상을 대신하며, 이때 들은 이야기로 모임에 나가 자신의 문화적 소양을 과시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와는 달리 ‘느림’과 ‘전통’, ‘역사’ 그리고 미술의 진정성이 가슴에 그대로 다가오는 전시가 눈길을 끈다. 이는 다름 아닌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색채의 연금술사-루오’전(2009. 12. 15~2010. 3. 28)이 그것이다.

신에 대한 충일한 믿음으로 신을 인간들 속에서 찾고자 했던 구도자 조루주 루오(Georges Rouault·1871. 5. 27~1958. 2. 13)의 화가로서의 생애와 그의 족적을 일별하게 해주는 데 부족함이 없다. 가벼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세상에 조용하지만 힘이 있고 점잖지만 무겁지 않은 스테디셀러 같은 고전을 연상시킨다.

루오는 우리에게 종교적인 화가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그의 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인간을 향한 것이었고, 어렵고 힘들고 배우지 못한 민초들에게서 신의 모습을 찾고자 했다. 인생 막장에 달한 인간들의 참혹한 현실에서 그는 인간으로 현현한 신을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결국 그의 회화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자 탐구인 동시에 그림 그 자체가 실존 그 자체이기도 하다.

20세기를 장식한 마티스, 피카소를 가르친 G 모로를 사사한 루오는 어릴 적부터 녹록지 않은 재능을 과시했지만, 가난 때문에 스테인드글라스 공장에 나갔다. 그의 이런 경험은 후에 그의 다양하면서도 조화로운 빛들이 교차하는 듯한 색채를 구사하는 바탕이 되어 주었다. 그는 야수파의 일원으로 활동을 시작하지만 잠시 후 반 고흐의 짧은 생을 이으려는 듯 강한 명암 대비와 격정적인 화면으로 변화한다. 이즈음 그는 성서와 신화를 주제로 시작해서 창부나 곡마단의 어릿광대 등 밑바닥 인생들을 그리면서 인간의 내면에 빠져든다. 이 시기 그의 작품은 격렬하고 거칠 것 없는 색채와 붓 터치를 구사하지만 그림 속 인물들의 눈동자에는 슬픔이 비치면서 그의 회화의 매력이라 할 거침 속에 여림이 그대로 전해진다.

이런 루오에 반해 일본에 유학 중이던 이중섭이 그를 추종하고 그래서 친구들은 이중섭을 ‘동양의 루오’라고 불렀다 한다. 가벼운 처세술 책이나 막말이 판을 치는 요즘, 루오를 다시 만나고 나니 책장을 지키는 고전 한 편을 다시 읽은 기분이다. 나 혼자만의 감상일까.

미술비평가·국민대 초빙교수
2010-01-0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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