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 내한으로 본 악기 운송 대작전
해외 유명단체의 내한 공연. 지휘자나 단원들보다 더 VVIP급 대우를 받는 주인공은 따로 있다. 바로 이들의 ‘악기’다. 적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수억원을 호가하기 때문에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낭패다. 심지어 악기를 운반하는 인부들의 키까지 비슷하게 맞춘다는데…. 12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네덜란드의 로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사례를 토대로 ‘악기 운송 특급대작전’을 파헤쳐 봤다.

한국의 공연기획사와 현지 공연단체가 공연 계약을 맺을 때 악기 운송 계약도 함께 이뤄진다. 계약에는 얼마나 많은 악기를 수송할 것인지, 또 어떤 수송 전문업체를 쓸지 등이 포함된다. 유명 교향악단일수록 실어 나르는 악기가 많다. 자신의 악기로 연주해야 한다는 음악적 자존심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번 콘서트헤보 공연도 무려 130여개의 악기를 공수해 왔다. 큰 타악기인 ‘팀파니’는 물론 ‘지휘자 스탠드’까지 가져왔다.


악기를 포장하는 방식도 중요하다. 비행기 진동에 견딜 수 있는 보호장치가 필요하다. 콘서트헤보처럼 해외공연이 잦은 오케스트라들은 자체 특수 보호장치를 갖고 있다. 내부는 부드러운 쿠션으로, 외부는 강철로 이뤄져 있다. 일부 유명 연주자들은 악기를 특수 포장하지 않고 자신의 옆자리에 ‘모시기도’ 한다. 악기용 좌석을 추가로 구매해 직접 운반하는 것. 스트라디바리우스나 과르네리와 같이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바이올린은 대부분 의자에 ‘앉아’ 점잖게 온다. 특수 보호장치도 못 미더워서다. 항공사에 따라 악기용 좌석에 마일리지도 적립해 준다. 얼마 전 대한항공은 첼리스트 장한나의 공개적인 문제 제기로 악기용 좌석에 마일리지를 적용해주기로 했다.
#3단계 수송:카르네 드 패시지 필수
악기들은 일반 화물이 아니라 특수 화물로 분류된다. 기체의 진동과 온도 및 습도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특수 처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단원들이 타는 비행기가 아닌 특수 화물 전용기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 공항에 도착하면 통관 절차를 해결해야 한다. 대부분의 나라가 고가의 악기에 수입관세를 물리고 있어 이를 면제시켜 달라는 요청서를 작성해야 한다. 공연만 하고 금방 나간다는 내용의 무관세 통관 증명서인 ‘카르네 드 패시지’(Carnet de Passages)를 발급받아 세제 혜택을 받는다.
#4단계 운반:인부들 키도 비슷하게 선발
공항에서 공연장까지 실어 나르는 과정도 까다롭다.
심지어 악기를 나르는 인부들의 키도 비슷하게 맞춘다. 균형이 맞지 않아 생길 수 있는 파손 가능성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역시 항온·항습 처리가 된 특수 트럭으로 운반한다. ‘무진동 기능’도 있는 트럭이다. 콘서트헤보 공연은 워낙 공수된 악기가 많아 무진동 차량만도 5~6대가 동원됐다.
예전에는 국산 무진동 차량이 없어 어려움이 컸지만 지금은 국내에서도 생산돼 비용이 크게 절감됐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악기 운반에만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이 든다. 콘서트헤보 공연은 억대라는 후문. 악기는 단원들이 머무는 호텔이 아니라 공연장으로 곧바로 옮긴다. 이곳 철제 보관함에서 ‘철통 경호’를 받는다.
#5단계 보험:공연단체나 연주자가 현지서 가입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보험은 필수. 개인 명의든 단체 명의든 악기 보험을 현지에서 들어놓은 경우가 많아 초청자 측에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박선희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음악사업팀 과장은 “해외 유명단체의 내한공연을 추진할 때 가장 까다롭고 민감한 부분이 악기 운송”이라면서 “이 부분만 합의해도 기획업무의 절반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털어놓았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2010-11-12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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