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국민의 안전보다 정치적 타산이 앞설 때/김태균 도쿄 특파원

입력 : ㅣ 수정 : 2020-03-30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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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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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균 도쿄 특파원

지난주부터 일본의 코로나19 감염자가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고 보면 결국 터질 게 터진 것이다. 감염 수치의 증가와 함께 일본 정부가 ‘오버슈트’(폭발적 감염 확산), ‘긴급사태 선언’ 등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서면서 낮은 검사율을 통해 근근이 유지돼 온 일본 국민들의 가공된 평정심은 완전히 무너졌다.

공포감은 정부 당국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동반한다. ‘벚꽃을 보는 모임’, ‘탈법적 측근 검사장 정년 연장’ 등 갖은 의혹과 비리 속에서도 바이러스 위기 극복에 능력을 발휘해 주길 기대하며 참아 왔던 국민들의 인내심은 감염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 결국 밑천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당장 일본 국민들은 왜 도쿄올림픽 연기 직후에 코로나19 감염자가 급증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일본 전역의 하루 감염자 수는 지난 23일 39명에서 24일 71명으로 뛴 것을 기점으로 25일 96명, 27일 123명, 28일 208명 등 며칠 새 폭증세를 보여 왔다. 24일은 아베 신조 총리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의 협의를 통해 ‘도쿄올림픽 2021년 연기’를 결정한 당일이었다. 올림픽을 예정대로 치르기 위해 검사를 최소화하며 실상을 은폐했던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마이니치신문은 지난 28일 인터넷판에 ‘올림픽 연기 결정 후에 코로나19 검사가 급증했다는 게 정말인가’라는 제목의 팩트체크 기사를 싣기도 했다.

국가적 재앙이 터지면 정치 지도자들은 국민들과 아픔을 같이하며 시련을 함께 극복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야 하고 그에 부합하는 행동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이해타산을 더 우선시한다는 인상만을 강하게 풍겨왔을 뿐이다.

지난 5일 자국내 수많은 전문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중국에 대해 코로나19 관련 입국제한 조치를 취한 것 역시 정치적인 고려를 우선시한 결정이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국빈 방일 연기가 알려지고 3시간여 만에 아베 총리 자신이 직접 두 나라에 대한 입국 규제를 발표했다. 시 주석의 방일을 국민 안전에 우선하는 최고의 가치에 두고 있었음을 스스로 증명한 꼴이 됐다.

정치적 손익을 따지며 주판알을 튕겨 본 후에야 내리는 결정이 많다 보니 정책 대응도 기형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일이 많았다. 뜬금없이 국민 수천만명의 생활에 직결되는 ‘초중고 휴교’를 요청하면서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자신의 책임하에 내린 정치적 결단이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숱한 정책판단 실패나 부정비리 의혹을 거치면서 아베 총리 스스로 책임을 진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오는 7월 재선을 노리는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도 갑자기 지난주부터 부산을 떨고 있다. 1400만 도쿄도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으면서도 올림픽에만 정신이 팔려 변변한 기자회견 한번 제대로 하지 않더니 며칠새 연일 TV에 나와 ‘이동자제’를 요구하며 상황이 잘못되면 다 당신들 책임이라는 식으로 도민들에게 엄포를 놓고 있다.

이제 아베 총리에게 남은 가장 중요한 판단은 비상사태를 선언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일이다. 경제와 사회를 지금보다 더한 마비 상태로 몰고갈 비상사태 선언은 어떤 지도자도 선뜻 집어들기 어려운 선택지다. 무엇보다도 ‘아베노믹스’의 상징으로 그가 애지중지해 온 주가에 비상사태 선언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비상사태를 선언해야만 하는 오버슈트의 시점이 되더라도 아베 총리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다.

아베 총리가 이제부터라도 개인의 이해타산과 성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행정수반으로서 위기극복의 기본자세로 돌아오게 될 지 궁금하다.

windsea@seoul.co.kr
2020-03-3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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