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협력 우수기업에 인센티브 부여 등 검토해야”
정부가 대기업·중소기업 간 상생 문제를 강조하고 대기업들도 잇따라 자체적인 상생 방안을 내놓고 있다. 중소기업계는 이런 노력에 대해 기대하면서도 실질적인 ‘상생협력’이 이뤄질지 미심쩍어한다. 대기업계는 최근 분위기에 대한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며 마지못해 대책을 마련하는 분위기다. 서울신문은 지난 9일자부터 5회에 걸쳐 대기업과 중기업이 더불어 잘살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했다. 김영용 한국경제연구원장과 송재희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의 지상(紙上) 대담을 통해 바람직한 상생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김영용 원장 대기업의 성과는 부품을 공급하는 중소기업의 협조를 통해 가능한 것이었다. 대·중소기업 간 공존은 산업의 효율성과 직결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최근 상생 논란이 적정한가
유종일 교수 솔직히 최근 상생 논란을 보면 답답하다. 사회적 책임에 둔감한 기업도 문제지만 정책이나 제도가 대기업의 횡포를 용인하도록 되어 있는데 말로만 상생하라면 되겠나. 제도적 접근과 더불어 공정거래법 등 기존 법 제도를 제대로 집행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송 부회장 중소기업들도 대기업 못지않게 경제위기 극복에 큰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많은 중소기업이 경기회복의 온기를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행위와 대기업의 무분별한 중소기업 사업영역 침범 때문이다. 중소기업들이 특혜를 달라는 것은 아니다. 기여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고, 공정한 경쟁여건이 조성되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를 대·중소기업 간 갈등이나 포퓰리즘으로 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대통령이 직접 나설 정도로 대·중소기업 간 상생 문제가 국가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김 원장 논란이 대기업은 높은 수익을 내는 데 반해 중소기업은 그렇지 못한 데 원인을 두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는 근본적으로 대·중소기업 간 생산성 격차 때문이다.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혁신과 구조조정이 지연돼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낮아져 격차가 커졌다.
→불공정거래 중에 가장 큰 문제는
송 부회장 무리한 납품단가 인하와 유통 대기업들의 부당한 횡포 등이 문제다. 대기업의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는 협력기업의 채산성 악화로 이어지고 결국 신규투자가 감소해 기업 경쟁력이 약화된다.
납품단가 인하의 경우 구두발주 뒤 경미한 과오를 이유로 납품단가를 깎거나 현금결제 등을 조건으로 하도급대금의 일정비율을 감액하기도 한다. 또 원가계산서를 수시로 요구해 최소한의 이익만 보장하고 삭감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백화점 등 유통 대기업들은 수수료를 부당 인상하거나 인테리어·행사비용 등을 입점업체에 전가하기도 한다. 또 세일 등 특판 참여를 강요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김 원장 중소기업계에서는 그런 이유로 납품가 연동제를 요구하지만 이 역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비용이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이 비용을 결정한다는 경제원론에 어긋난다. 또 자동적인 가격 보장시스템은 기업의 기술혁신 및 경영혁신 유인을 약화시킨다. 또 소비자와 원사업자의 부담을 국가가 강제하게 되면서 결국 해외 아웃소싱 확대로 국내 산업이 공동화될 우려도 있다.
→납품단가 갈등의 해결책은
김 원장 납품단가 계약은 대·중소기업 간의 사적 계약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나 미국 등은 납품단가에 대해 정부가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이는 결국 시장경쟁을 통한 비용절감과 품질제고 등을 제약한다.
따라서 대·중소기업이 긴밀하게 협력해 부품의 모듈화와 부품 개수를 줄여 부품생산 단계부터 비용절감에 나서야 한다. 또 디자인과 공정, 자재, 기술 등과 관련된 중소기업의 제안을 대기업이 폭넓게 수용하는 것도 방안이다.
송 부회장 납품단가 계약은 시장 경제원리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원자재를 대기업에서 구입해 다시 대기업에 납품하는 ‘샌드위치 신세’다. 납품단가 현실화를 위해 대기업이 하도급대금의 부당 감액에 대해 직접 입증하고, ‘납품단가 조정협의 의무제’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유 교수 대·중소기업 간 협상력 차이가 납품단가 갈등의 근본 원인이다. 업종별 조합 등에 협상권을 줘서 협상력의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방안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중소기업 특허기술이나 인력 유출 문제는
송 부회장 힘들게 기술을 개발한 중소기업이 사실상 특허를 빼앗기는 사례가 많다. 상품화를 위해 대기업에 관련 자료를 제공했다가 대기업이 유사한 제품을 직접 생산하고, 특허등록 무효소송을 제기하는 식이다.
유 교수 기술유출 문제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엄격히 단속해 일벌백계해야 한다. 그러나 인력 유출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딱히 막을 방법이 없다. 다만 중소기업이 적정한 납품가격을 보장받아 기술인력에 대해 제대로 대우를 해 줘야 한다.
김 원장 부정적인 현상만 많이 부각됐지만 대·중소기업 간 공동기술개발과 대기업 특허 활용, 중소기업의 기술역량 강화 지원 등의 협력 사례도 많다. 대기업의 기술을 협력업체에 지원하거나 대기업이 재원을 조성해 중소기업의 연구·개발(R&D)을 돕기도 한다.
대신 부당한 기술자료 요구를 방지하기 위해 ‘기술자료임치제도’가 도입돼 있다. 정부가 대기업의 부당한 기술자료 요구 행위를 방지하는 기존 제도를 제대로 집행하는 것도 필요하다. 다만 소프트웨어 산업은 특성상 이직률이 높다. 또 인력 이동은 대·중소기업보다 중소기업 간에 더 많이 일어나고 있다.
→1차와 2~4차 협력업체 갈등의 해법은
유 교수 핵심은 대기업과 1차 협력업체 간 공정거래 문화의 정착이다. 여기서 올바른 관행이 확립되면 2~4차 협력업체까지 공정거래 문화가 확산될 수 있다.
송 부회장 대기업이 2~4차 협력업체의 거래 현황을 상호 파악할 수 있도록 거래 단계별 협력기업이 전부 참여하는 의사소통 채널을 확보해야 한다. 또 1차 협력업체의 2~4차 협력업체에 대한 불공정거래 행위 근절을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 정부는 대기업 상생협력 이행 실적을 평가할 때 2~4차 협력업체에 대한 지원 실적과 2~4차 업체의 만족도 등을 반영, 1차 협력업체의 지원을 적극 유도하는 등의 실효성 있는 유인책도 마련돼야 한다.
김 원장 국내기업 간 하도급 구조에서 문제가 되는 거래는 대기업과 1차 협력업체보다 1차 협력업체와 2~4차 업체 사이에서 발생하고 있다. 2차 이하에서 발생하는 납품단가 인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연구개발 인정 범위나 현금 결제 확대 등의 조치가 강구돼야 한다.
→정부가 가장 서둘러야 할 일은
유 교수 정부 출범 이후 취해온 감세, 규제완화, 친기업정책이 결과적으로는 ‘대기업 프렌들리’ 정책이고 양극화를 심화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공정한 시장경제를 구축하기 위한 패러다임의 전환과 이에 따른 제도 개혁과 정책 선회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송 부회장 정부는 공정거래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실질적인 상생협력이 이루어지도록 실효성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법을 위반한 기업을 대외에 공표하고 국책사업 참여를 배제하는 등 엄중한 제재조치가 필요하다. 또 미국처럼 대기업의 불공정거래로 인한 중소기업의 피해를 보상하는 손해배상제도와 상생협력 우수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 등의 제도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
이두걸·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2010-08-1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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