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재단-부자의 상상력을 기부하라] (3부) 한국형 공익재단의 도전 ⑦푸르메재단

[공익재단-부자의 상상력을 기부하라] (3부) 한국형 공익재단의 도전 ⑦푸르메재단

입력 2012-08-04 00:00
수정 2012-08-04 01:3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내 절박함·진심이 힘과 돈을 모았다”

사내는 절박했다. 우리 나이로 마흔이던 2002년, 일간지 기자 생활을 접고 공익재단과 병원 설립에 도전한 건 온전히 절박함 때문이었다. 4년 전 그는 영국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혼수상태에 빠진 아내는 100일 만에 깨어났지만 한쪽 다리를 잃었다. 그리고 귀국. 아내가 입원한 재활병원의 풍경은 아비규환이었다. 비좁은 병상에는 환자와 보호자, 간병인이 몸을 맞댄 채 24시간 생활했다. 불러도 대답 없는 불친절한 의료진이 대다수였다. 그는 ‘선진국 의료시설 같은 재활병원을 반드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계획을 세운 지 꼭 10년째 되는 지난달 서울 종로구 신교동에 ‘푸르메재활센터’를 개관했다. 장애 어린이를 위한 재활시설과 치과, 복지관 등이 들어섰다. 땅도, 돈도, 의료 인력도 없던 그는 어떻게 10년 만에 병원을 지었을까. ‘사내’ 백경학(49)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를 3일 푸르메재활센터에서 만나 성공 비결을 물었다.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가 3일 서울 종로구 신교동 푸르메재활센터에서 치료 중인 5살 꼬마를 안고 있다. 내년이면 쉰 살인 그의 표정이 꼭 소년처럼 해맑다.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가 3일 서울 종로구 신교동 푸르메재활센터에서 치료 중인 5살 꼬마를 안고 있다. 내년이면 쉰 살인 그의 표정이 꼭 소년처럼 해맑다.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목표사업 뚜렷해 기부자 설득 수월

백 이사와 재단이 비교적 짧은 기간에 비전을 현실화할 수 있었던 건 목표를 구체적으로 잡은 덕이 크다. ‘장애인을 돕겠다.’는 막연한 목표 대신 ‘재활 병원 설립’이라는 뚜렷한 계획을 세웠다. 목표 사업이 뚜렷하니 추진력이 붙었고 훗날 기금 모금 때도 기부자들을 설득하기 편했다. 첫 번째 성공 키워드다.

의사가 아닌데다 자금마저 충분치 않던 백 이사가 병원을 지으려면 우선 비영리재단이 필요했다. 재단이 있어야 기금을 모아 장기적으로 사업을 꾸려나가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재단 설립을 허가받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종잣돈이었다. 고민 끝에 아이디어가 뇌리를 스쳤다. 하우스 맥주가게였다.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2002년 영세업자의 맥주 제조가 허용된 터라 양조전문가인 후배 방호권씨 등과 함께 가내제조 맥주 전문점 ‘옥토버훼스트’를 강남에 오픈했다. 재산을 쌓은 뒤 자선을 결심하는 보통 자산가들과는 반대로 자선을 위해 돈벌이에 뛰어든 것이다.

도박 같았던 맥주 사업은 성공했다. 맥주집 한쪽에서 재단설립 구상을 마친 백 이사는 2004년 자신의 맥주사업 지분 10%(약 2억 8000만원 상당)와 사재를 내놓아 푸르메재단을 세웠다. 이후 아내가 보험사와 8년 소송 끝에 받은 교통사고 보상금 중 절반인 10억 6000만원을 재단에 기부했다. 백 이사는 “주변 사람들도 ‘전재산의 절반 이상을 재단에 바친 사람이라면 믿어도 되겠다.’고 생각한 듯 싶다.”고 말했다.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이 된다

백 이사가 전한 재단의 두 번째 성공 비결은 ‘여럿이, 함께’다. 그는 재단 설립과 운영 과정을 혼자 감당하지 않았다. 대신 집요한 설득으로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을 늘렸고, 힘을 합쳤다. 김성수 대한성공회 주교와 강지원 변호사가 각각 재단 이사장과 이사를 맡아 줬고 전신화상의 아픔을 이겨낸 작가 이지선씨와 가수 션 등이 홍보대사 제안에 응했다. 병원 건립 때 보태라며 돈을 내놓은 기부자도 7000명이나 됐다.

백 이사에게 사람과 돈을 끌어모은 비법을 물었다. “결국 감동의 문제”라는 답이 돌아왔다. “좋은 일하라.”는 강요 대신 장애인 재활 사업에 힘을 더해야 하는 이유를 체감하도록 해야 마음도, 주머니도 열린다는 얘기다. 그는 “최근 외국계 항공사 직원에게 장애 아동과 함께 민속박물관 등을 견학하게 유도했다. 아이들과 그 가족의 어려움을 이해해야 기부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 박완서 작가가 생전 인세와 글 등을 기부한 것도 백 이사의 진정성 담긴 편지 때문이었다.

백 이사는 푸르메 재활센터 건립 때도 ‘제3섹터 방식’(시민과 기업이 기금을 모으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부지와 행정 지원을 제공해 시설을 짓는 방식)을 통해 여럿이 힘을 합쳤다. “의료서비스가 공공사업인 만큼 재활병원 설립은 국가의 몫”이라는 것이 백 이사의 철학이다. 다만, 정부가 직접 운영할 경우 관료주의의 덫 등에 걸릴 수 있는 만큼 운영은 노하우가 있는 민간에 맡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푸르메 센터의 재활시설에서는 운영을 위해 환자에게 최소한의 비용은 받지만, 불필요한 치료를 권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환자가 있다면 기업 등에게 지원을 부탁할 예정이다.

재활병원인 푸르메 센터를 세웠지만, 백 이사는 “여전히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이 센터는 외래병원인 탓에 입원을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마포구로부터 병원 부지를 빌려 병상 100개를 갖춘 연면적 1만 6860㎡ 규모의 어린이재활병원을 내년 착공할 계획이다. 2015년 개관이 목표인데 380억원가량이 드는 건축비 등을 계속 모금 중이다.

병상을 갖춘 재활병원이 세워져도 고민은 여전히 남는다. 입원을 원하는 어린이 환자는 1만 5000명이나 되는데 병상은 150분의1수준인 탓이다. 백 이사는 “푸르메 병원이 모델이 돼 전국 8개권역에 선진 재활병원이 최소 하나씩 건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후원문의 (02)720-7002.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2012-08-04 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