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가구 자녀세액공제제도 도입을, 인센티브 혜택 등 민간참여 유도 시급
정부 저출산 대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절실하다. 전문가들은 재정 지출의 우선 순위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프랑스나 스웨덴 등 출산 정책이 풍부한 유럽 국가들처럼 재원을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10일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를 강조하느라 복지는 국가가 아닌 개인 차원의 문제라는 인식이 강했다.”면서 “이제 저출산 대책에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하는 차원에서 고소득자에게 높은 누진세를 적용하는 등 사회적 합의 도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민들은 관련 정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만큼 세금을 내고 국가는 투명하고 균형 있게 재원을 분배해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2026년 초고령사회(노인인구 비중 20% 이상)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될 정도로 고령화의 속도가 유례를 볼 수 없을 만큼 빠르다. 그 결과로 노동력 부족과 젊은 세대의 노인 부양 부담 급증이 불가피하다.
신윤정 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아동, 여성, 가족에 대한 책임을 지금까지 개인에게 미뤄왔으나 이제는 한 가정의 아이를 키우는 게 결국 국가가 할 일이고 국가를 위한 일이라는 생각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주력하고 있는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기치도 세심한 설계 없이는 말뿐인 잔치로 끝날 수 있다. 저출산 대책이 취약계층, 저소득층에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출산율이 내려갔다가 다시 반등한 유럽 국가들은 저소득층이 아닌 중산층 이상까지 정책을 펼친 사례가 많다.
프랑스는 1994년까지 합계출산율이 1.66명까지 떨어지다 그 다음해 1.71명으로 늘어났고 2006년에는 1.98명까지 올랐다. 우리나라는 보육료나 육아휴직의 급여수준 등도 노르웨이, 스웨덴 등과 비교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평균 임금 수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월 50만원을 육아휴직 수당으로 지급하지만 스웨덴은 임금의 80%까지 보장한다. 유럽 국가들은 여성들이 휴직하면 받는 양육 수당을 여성들이 일을 하지 못한 데 대한 기회비용 차원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육료 지원 확대는 구매력이 낮은 저소득층에게 절실한 방안이지 중산층은 시간 연장형이나 야간 보육 시설 같은 보육 인프라, 사교육 경감 등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소득별로 저출산 정책에 대한 요구사항이 다르기 때문에 무조건 수혜 대상을 늘리 데만 급급해서는 실효성이 없다는 견해다.
김현숙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워킹맘 가구에 대한 자녀 세액공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자녀가 있는 일하는 엄마에 대해 소득세를 깎아주자는 취지”라면서 “이전 정부에서도 법으로 만들고 싶어했으나 세수 결손에 세액 감면을 온갖 곳에서 요구하니까 경제 부처에서 반대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회 예산정책처의 조사 결과 우리나라 저출산 대책의 74.1%는 출산·보육 등 초기 대응에 맞춰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실제 부모들이 체감하고 있는 부담은 아이가 자라면서 생겨나는 주택 문제나 교육 문제에 쏠려 있으므로 아이가 태어나서 성인이 되기 전까지 생애 주기 전반에 걸친 정책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보육 인프라 확충과 출산 여성에 대한 고용 보장, 육아휴직 급여 보장 등 민간이 나서지 않으면 아무리 제도가 잘 갖춰져 있어도 출산율 개선 효과는 크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우선적으로 강제하거나 가정친화적인 기업들에 대해 보조금을 주는 방안이 적은 재정으로도 높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대철 국회 예산정책처 분석관은 “장애인 의무고용이 잘 지켜지지 않는 데서 나타나듯 기업들은 출산 장려 관련 법규를 안 지키는 게 과태료를 무는 것보다 더 이익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면서 “기업들을 제재하기 보다는 직장 보육시설이나 육아 휴직 급여 확대 등을 늘리는 등 인센티브를 주는 게 효과가 더 크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정서린 유대근기자 rin@seoul.co.kr
2010-02-11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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