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민의 노견일기] ‘희망’이 떠난 자리…가슴엔 구멍이 뚫렸다

[김유민의 노견일기] ‘희망’이 떠난 자리…가슴엔 구멍이 뚫렸다

김유민 기자
김유민 기자
입력 2019-07-27 12:12
수정 2020-05-2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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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된 작은 존재…미안함과 고마움, 사랑을 담아

[노견일기] 경진씨의 동생 희망이. 보고 있으면 미소가 나왔던 트레이드마크 표정
[노견일기] 경진씨의 동생 희망이. 보고 있으면 미소가 나왔던 트레이드마크 표정
희망아, 너를 처음 데리고 온 날을 기억해. 태어난 지 6개월이 지난 아기였어. 정돈되지 않은 털이 삐죽삐죽 나왔고 눈망울은 한없이 까맸지. 주둥이가 짧은 너는 항상 혀를 낼름 내밀고 있었어. 보고 있으면 미소가 나왔지. 귀여운 트레이드마크였어. 처음엔 우리가 낯설었는지 겁을 먹었지만 이내 마음을 열어준 너에게 감사해. 우리는 그렇게 가족이 됐지.

무작정 너를 데리고 왔지만 어떻게 해줘야할지 몰랐어.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없었던 아버지와 나는 너무나도 서툴렀어. 하지만 너는 그런 우리를 정성스레 핥아줬지. 매번 핥을 때마다 그러지말라고 다그쳤지만 그만큼 우리가 너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맹목적인 사랑은 누구에게도 받아본 적이 없었어. 네가 준 커다란 사랑을 우리는 반이라도 갚았을까.

너를 혼자 둔 시간이 많았다는 것이 끝까지 마음에 걸린다. 너는 외로워했어. 그러면서도 언제나 우리를 믿어줬던 것이 참 고마워. 금방 온다는 말을 바보처럼 믿어줬지. 돈 벌어서 맛있는 것 사주겠다고. 맛있는 간식을 자주 먹어서인지 너는 평균보다 살짝은 통통한 ‘뚱강아지’였어. 너무 통통한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 마음에 병원에도 자주 데려갔지만 그것만으로는 큰 이상이 없다고 했다. 나는 너의 뱃살을 통통 튀기며 또는 배방구를 불어대면서 너의 토실한 몸매를 놀려댔어. 우리를 보면 너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던 너는 배를 만져달라고 그랬다. 그럴 때마다 너를 번쩍 안았다. 너에게는 아버지와 내가 세상이고 우주라는, 그 말을 실감하면서.

너는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그 순간에서도 아버지와 나를 사랑해줬어. 얕은 숨을 할짝거리면서도 아버지와 나의 목소리에 귀를 쫑긋했지. 크게 뜬 눈은 이내 반쯤 감겨서 사경을 헤맸지만. 너가 듣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사랑한다는 말을 수없이 전했다. 네가 준 사랑을 갚기에는 너무나도 모자라다는 것을 아버지도 나도 잘 알고 있다.
[노견일기] 사경을 헤매면서도 우리를 사랑해줬던 희망이
[노견일기] 사경을 헤매면서도 우리를 사랑해줬던 희망이
너에게 배운 것이 참 많아. 외동아들로 자라서 그런지 나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항상 부족했어.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도 어려워했지. 누군가에게 마음을 준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남을 배려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난 너와의 교감을 통해서 배웠어. 나보다 약한 존재였기에 나의 보살핌을 받으면서도 너는 그 보살핌에 대한 대가를 너무나도 크게 해줬다.

아버지는 참으로 무뚝뚝한 사람이었어. 누군가에게 마음을 쉽게 여는 사람이 아니었지. 처음에는 너에게도 그랬던 것 같아. 하지만 아버지가 너에게 마음을 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지. 까만 눈을 가만히 뜨고 있는 너를 보고 있으면 그 누구라도 마음을 주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아버지는 그런 너를 이 세상 무엇보다 사랑했어.

너를 처음 데리고 올 때 너의 죽음을 각오하지 않은 것은 아니야. 강아지의 수명은 길어야 15년이라고 했으니. 아버지와 내가 세상을 살아갈 시간에 비하면 턱없이 짧았지. 그래서 너에게 마음을 줄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만 두려워졌다. 네가 조금이라도 아픈 날에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이제 5살밖에 안 된 어린 아기가, 아픈 지 3일 만에 황망하게 하늘나라로 떠났기에 그 충격도 훨씬 크다. 각오는 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으니까.

너는 유독 예쁜 아이였어. 내 동생이어서가 아니라 진짜로 그랬어. 너를 품에 안고 산책이라도 나가면 모두가 너를 쳐다봤다. 괜히 내가 우쭐해질 정도로. 아버지가 너를 산책에 데리고 나갔다 들어온 날에는 “동네사람들이 우리 희망이 이뻐서 죽으려고 한다”라는 말을 항상 전했다. 너는 네가 그리 이쁜 아이라는 것을 알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저 한없이 순하고 착하기만 했다. 말을 너무 잘 들어서, 속을 한 번도 썩이지 않았으니까. 온통 좋은 추억만 남겼어. 너무나도 예뻤던 내 동생. 착하고 예쁜 아이라서, 하늘에서 너를 남들보다 일찍 데려간 것이라는 말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아.
[노견일기]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 목이 마르면 내가 쏟은 눈물을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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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떠난 자리는 이제 그 어떤 것으로도 메우지 못한다는 것을 아버지와 나는 알고 있어. 아버지와 나의 가슴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렸지. 이것을 가지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지금은 막막하다. 하지만 너의 마지막, 아파서 피를 토하는 그 고통에 비하면 한없이 작을 것이기에 일단 아버지와 나는 이 가슴으로도 주어진 삶을 살아가보려고 해. 나는 너에게 언제나처럼 “금방 갈게”라고 말했다. 무지개다리 건너서 그곳에 잠시만 얌전히 기다려주기를. 아버지와 내가 보고 싶겠지만 그곳에서 다른 강아지 친구들과 잠시 어울리고 있기를. 그리고 언젠가 아버지와 내가 그곳으로 갔을 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우리를 반겨주기를. 그때 나는 다시 너의 배를 통통 튕겨주고 배방구를 불어줄게. 또다시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조금만 기다려줘.

희망아.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 목이 마르면 내가 쏟은 눈물을 마시길. 천천히 편안하게 그곳에 가고 있기를 기도할게. 사랑해.

- 희망이가 떠난 날, 희망이 오빠가 하늘에 부치는 편지
김유민의 노견일기 - 늙고 아픈 동물이 버림받지 않기를
김유민의 노견일기 - 늙고 아픈 동물이 버림받지 않기를 http://blog.naver.com/y_mint 인스타 olddogdiary 페이스북 olddogfamily
한국에서는 해마다 약 8만 2000마리의 유기동물이 생겨납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들이 받는 대우로 짐작할 수 있다”는 간디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법과 제도, 시민의식과 양심 어느 하나 빠짐없이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생명이, 그것이 비록 나약하고 말 못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다 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견일기를 씁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은 슬픔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렵고, 그래서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유난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늙은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오랜 시간 동물과 함께 했던, 또는 하고 있는 반려인들의 사진과 사연을 기다립니다. 소중한 이야기들은 y_mint@naver.com 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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