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시장 대분석(3)-8000여 회사 경쟁… 다국적 기업도 10여곳
강현욱 베이징세농종묘 연구소장은 “중국인들은 채소를 고를 때 모양보다 색깔을 먼저 본다.”고 말했다. 화려함을 강조하는 중국인의 습관이 반영된 것이다. 강 소장은 “13억명의 인구를 먹여살리는, 중국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산업이 바로 농업”이라며 “중국은 연간 농업 생산량이 240조 8000억원에 달해 세계 농산물 시장의 5분의1을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다.베이징세농종묘의 박상견(오른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총경리와 강현욱 연구소장, 공대경 연구부소장이 연구단지 내 비닐하우스에서 함께 작물을 돌보고 있다.
●‘애니콜’보다 많이 팔린 한국 토종 무 종자
이곳에서 자동차로 30여분 거리의 세농종묘 종자연구소. 15만㎡ 부지에 120여개 비닐하우스와 연구동이 들어섰다. 강 연구소장은 “북방과 중부권에 맞춰 개량종자 개발이 한창”이라며 “7만㎡ 규모의 광둥연구소에서도 2007년부터 남방지역 개량종자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농우바이오의 자회사인 세농종묘는 중국에서 선전하는 거의 유일한 한국계 종자기업이다. 채소종자 위주의 시장공략으로 전체 5%대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빅5’ 규모다.
다른 한국 종자기업인 흥농종묘와 서울종묘는 외환위기 직후 다국적 기업에 인수됐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외치던 국내 종자산업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국가 경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대기업이나 은행뿐 아니라 종자산업도 외국 메이저사에 팔리는 운명을 맞았다. 탈출구는 바로 중국이었다.
세농종묘는 한·중 수교 직후인 1994년 중국에 진출, 운 좋게 1년 만에 독립법인을 출범시켰다. 그동안 20여개 품목, 100여종 종자를 대륙에 뿌렸다. 최근에는 위기의식도 커졌다. 공대경 연구부소장은 “일본과 한국, 중국의 종자기술이 각각 10배가량 차이가 난다지만 이대로라면 중국기술이 한국을 따라잡는 건 시간문제”라고 우려했다.
세농종묘도 최근 당근 교배종 시장에 집중하는 등 품종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자오춘(朝春)’이란 당근 종자는 시장점유율 70%를 기록 중이다. 배추종자인 ‘쓰지왕(四季王)’과 고추종자인 ‘스농칭자오(世農靑椒)’ 외에도 토마토·가지·수박·참외·멜론 등의 종자를 주력 상품으로 삼고 있다. 박 총경리는 “한국이 세계적인 품종 개량기술을 지닌 분야가 바로 배추, 고추 등 채소작물”이라며 “기후조건이 좋고 인건비가 싼 중국은 품종 개량 전진기지로 안성맞춤”이라고 말했다.
●중국사업 성공 비결은?
“‘13억명에게 껌 한 통씩만 팔아도’라는 말이 있어요. (김치로) 가정해 봅시다. 13억 포기가 되는데 결과는 뻔하죠, 망합니다.”
중국시장에서 한국기업들의 초창기 성적표는 보잘것없었다. 현지 주재원들은 입을 모아 “인구 13억명이라는 시장만 보고 덤벼든 경쟁사가 100여개였다.”고 회상했다.
박 총경리는 “한국기업 10곳 중 9곳은 단순히 숫자로만 계산하고 달려드는데 그러면 무조건 실패한다.”며 “문화와 정치적 배경에 대해서도 공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치를 예로 들면 김치 한 포기가 한국에서 100원이라면, 중국 소득수준에선 10원이 된다. 한국과 비교해 매출은 13억이 아닌 1억 3000만포기 수준으로 줄어든다. 그런데 중국인은 대부분 김치를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또 “(우리는) 중국에서 세금 많이 내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며 “눈높이를 낮추고 원칙에 충실해야 중국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관시’(關係)는 술 몇 잔 함께 먹는다고 쌓이는 게 아니다.”면서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나중에 부탁할 때 (중국인은) 바로 선을 그어 버린다.”고 말했다. 중국인은 감성적인 만큼 진실하게 다가가 마음을 건드리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세농종묘는 매년 2000만원가량의 장학금을 지역 학생들에게 내놓고 있다.
30년간 종묘사업에 종사해온 박 총경리는 2003년 6월 부총경리로 발령받아 중국으로 건너왔다. 2006년에는 중국 10대 농업경제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중국은 인구 13억명 가운데 7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한다.”며 “면적은 남한의 97배이지만 아직 채소종자 시장 규모가 2540억원 수준에 불과해 계속 커질 것”이라 전망했다.
sdoh@seoul.co.kr
2010-07-15 4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