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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톡톡 다시읽기] <7> 프란츠 카프카 ‘변신’

[고전 톡톡 다시읽기] <7> 프란츠 카프카 ‘변신’

입력 2010-03-01 00:00
업데이트 2010-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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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갑한 현실 탈출… 쉼없는 변신 뿐!

어느 날 해충으로 변한 그레고르 잠자. 어떻게 그를 이해할 수 있을까. 벌레가 된 자신을 쳐다보던 그레고르 군을 이해하려면 우리 자신이 벌레가 되어야 하리라. 법학박사 학위를 갖고 프라하의 보험 회사에 취직했던 정규직 공무원 프란츠 카프카는 자신 안에 무섭게 꿈틀거리는 글쓰기 욕구를 참지 못하고 퇴근과 출근 사이의 한밤 전부를 문학에 바치기로 결심한다. 1915년 ‘변신’이 발표되자마자 독일어권 독자들은 해충이 되어버린 인간을 접한 충격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점점 동물의 소리를 내다 죽어버리는 한 마리 인간에게서 시민적 삶에 얽매인 자신을 발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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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정벌레 머리를 가진 인간
딱정벌레 머리를 가진 인간


카프카의 작품세계 안에서 인간이 벌레가 되고 원숭이가 사람이 되는 이야기는 특별한 테마가 아니다. 단편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1919)도 감옥 같은 현실과 그곳에서 탈출하기 위한 모험을 다룬다. 원숭이 피터는 동물원에 갇힐 수는 없다고 생각해 필사적으로 출구를 찾는다.

마침내 그가 선택한 방법은 인간을 모방하는 일. 소주병을 들고 술 취한 듯 휘청거리는 인간을 따라하면서, 피터는 동물원 대신 인간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현실이 갑갑하고 싫다면 가만히 서 있지 말고 출구를 찾아라! 원숭이 피터의 메시지는 확실했다. 그러나 부당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어째서 변신인가.

① 나는 한 마리 커다란 딱정벌레

‘변신’은 해충이 된 그레고르를 보며 작중 인물들이 모두 당황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독자들이 되레 당황스러워지는 작품이다. 사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변신한다. 그레고르는 그를 비난한 회사 지배인조차 언젠가는 변신할지 모른다고 확신했다.

해충으로 죽는 그레고르의 운명이 비극적이지 않은 까닭은 작가 카프카가 변신의 가능성을 모든 존재에게 열어 두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변할 수 있고,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해충이 될 것을 두려워 말라!

변신이 절망적인 세계의 희망이 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카프카는 나의 변신이 세상의 변신과 연결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변신’은 그것을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1장에서 갑자기 그레고르는 변신한다. 잠자씨네 큰아들은 더 이상 돈 벌러 나갈 수 없게 되면서 아들로서의 자격을 잃는다. 하지만 그 순간 돈 버는 기계 같았던 그의 삶도 완전히 멈춘다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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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을 암시하는 딱정벌레 그림자 인간
변신을 암시하는 딱정벌레 그림자 인간


② 변신의 달인, 세계를 바꾸다

2장에서는 가족들의 변신이 일어난다. 해충과 함께 살아야 한다니! 이제 누가 돈을 벌어오지? 아버지는 갑자기 숨겨 놓았던 돈을 꺼내고, 어머니와 여동생 그레테도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집 밖으로 나가게 된다. 가족들 모두 그를 경멸하고, 어머니마저 그레고르를 찾지 않는다. 가족애란 겨우 이런 것이다! 부모의 사랑, 형제애 이 모든 것의 허울이 벗겨지고 적나라한 실체가 드러나게 된다.

가족들의 냉혹한 변신과 발맞추어 그레고르도 점점 인간의 감각을 떠난다. 잘 먹던 우유보다는 더러운 음식에 더욱 길들여지며 침대 밑이라든가 천장을 돌아다니는 일이 두 발로 걷는 것보다 편해진다. 아버지는 이런 그레고르를 더 이상 사람으로 여길 수 없다는 뜻으로 사과 한 알을 그의 등 뒤에 던져 박는다.

그레고르가 시력을 상실하자, 가족들은 그가 눈앞에서 기어 다녀도 없는 것처럼 무시한다. 이렇게 그레고르는 가족의 일상으로부터 완벽하게 사라질 수 있게 된다.

3장에서는 잠자씨네를 둘러싼 시공간이 달라진다. 생계를 위해 하숙인들이 집을 장악하고 그들의 물건이 집안을 채우게 되면서 과거의 잠자씨네 공간은 이제 그레고르의 방 한 칸 크기로 줄어든다. 폐쇄된 그들의 집이 낯선 이방인들에게, 사회의 상업 질서에 개방되면서 ‘변신’의 시공간은 훨씬 더 확장된다.

그 안에서 그레고르는 점점 더 ‘싯싯’ 소리를 내고 인간의 말 소리가 아니라 씹는 소리에 민감해져 간다. 마침내 인간의 언어와 인간의 이름을 다 잃는다. 그레테가 참지 못하고 “우리는 저것에서 벗어나야 해요.”라고 외쳤기 때문이다. 이 말은 외판원 그레고르가 차마 내뱉지 못했던 말이기도 했다. 너희들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결국 “저것” 그레고르는 박혀서 썩는 사과와 가족들의 비난을 안고 서서히 죽는다. 이렇게 철벽같이 갑갑하던 현실을 떠난다.

③ 다른 삶을 살라

단지 그가 해충으로 변신했을 뿐인데 가족도, 그를 둘러싼 세계도 다 변해버렸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의 누이 모두 그레고르 없이 노동과 사랑에서 새로운 관계를 찾았다. 그가 죽자 가족들은 더욱 건강해지고 그레테의 젊음과 함께 낯선 꿈을 희망하게 되었다.

물론 잠자씨네 가족의 새로운 삶이 얼마나 훌륭해질지는 미지수다. 결국 그레고르만 불쌍해진 것일까. 아니다. 현실이 변함없이 강고하게 유지된다 해도 일순간 이 쳇바퀴 같은 현실을 멈출 수 있었다는 점에 주목하자. 해충의 삶을 택하는 동시에 아들과 오빠의 삶을 버림으로써, 그레고르는 한없이 숨막혔던 삶의 질서를 정지시키고 그것들로부터 빠져 나갔다.

카프카는 이야기한다. 만약 당신이 자유롭고 싶다면 반드시 어떤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외판원 하기 싫으니 수영선수 하겠다, 한국이 싫으니 미국 가서 살겠다는 식으로는 이 견고한 시민 사회의 삶을 떠나거나 바꿀 수 없다. 자유의 공간을 찾아 떠나지 말고 지금 이 삶을 정지시켜라. 거기에서 출구가 열린다. 그레고르 잠자의 갑작스러운 변신이 일어난 아침이야말로 바로 그 출구였다.

카프카는 ‘변신’을 통해 지금 있는 이 자리에서 다른 삶을 살 것을 권한다. 익숙했던 모든 습관을 당장 떠나라! 마치 벌레가 된 듯, 원숭이인 듯, 이 순간 낯설게 세상을 보고 경험하라. 맛있던 것, 듣기 좋았던 것, 심지어 사랑했던 사람과도 헤어질 각오를 하고 낯선 삶을 시도하라. 내가 변하면 내가 속한 세계도 변한다. 현재의 나를 고집하면서 나의 권리와 나의 자유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아예 다른 나가 됨으로써 이 한계 상황의 배치를 바꾸자.

그레고르는 가족에게서 추방당하는 슬픔을 무릅쓰고 해충의 본능을 좇았다.

다른 것이 되기 위해서.

다른 삶을 살고 싶어서.

변신 하라. 하고 또 하라.

네가 변하면 너를 둘러싼 전체가 바뀐다.

이것이 그레고르의 명령이다.

오선민 수유+너머 구로 연구원
2010-03-01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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