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간 열띤 토론…용어 하나에 격론도

5개월간 열띤 토론…용어 하나에 격론도

입력 2010-05-10 00:00
업데이트 2010-05-10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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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지식인이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1910년 체결된 한일병합 조약은 무효’란 내용의 성명을 동시에 발표하기까지에는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한일 지식인 200여 명은 10일 이러한 내용을 공동 발표하기 직전까지 약 5개월간 열띤 토론과 논의 과정을 거치며 용어 하나하나에 신경을 썼고 때론 격론을 벌이기도 했다.

 김영호 유한대 총장 등이 주도한 한일 지식인 공동성명 발표 작업이 처음 시작된 때는 지난해 말이다.

 올해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아 의미 있는 일을 찾던 김 총장은 작년 12월 와다 하루키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 등 평소 가깝게 지내던 일본 학계 전문가와 통화한 뒤 같은 달 도쿄에서 6명이 만나 밤샘 토론을 거쳐 한일 공동작업을 하자고 뜻을 모았다.

 누가 시켜서 한 작업도 아니고 재정적 지원 없이 한일 지식인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김 총장은 첫 모임 이후 한국의 지식인에게 동조를 구했고,한일병합 조약의 부당함을 알려온 학계 전문가들에게도 연락을 취했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와 정창열 한양대 명예교수,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등이 큰 관심을 보이며 적극적으로 나섰다.이장희 외국어대 교수는 국제법적 측면에서 조언해 주는 등 본격적으로 사업이 추진됐다.

 발표 전까지 양국은 일차적으로 100명씩 서명을 받을 계획이었으나 한국에서는 109명,일본에서는 105명에게서 서명을 받아냈다.

 그러나 합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한국과 일본 지식인의 합의로 공동 성명 작업이 시작되긴 했지만 일본 지식인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총장은 “6대4 정도로 한국에서 하자는 식으로 진행됐다고 봐도 될 것 같다.하지만 일본 사람들을 설득하는 게 중요했다.이들에게 편리한 문장으로 성명서를 작성하려고 문장을 4대6 정도로 일본 측에서 많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사업 추진 과정에서 여러 억측과 이론도 많았고,서로 믿을 수 있는 정서를 만들려고 역사 서술에 치중하다 보니 선언문이 예상보다 길어졌다.

 성명서에 포함된 ‘한일병합조약은 원천 무효’라는 표현에 부담을 느껴 서명을 철회한 일본인도 있었다.

 김 총장은 “일본의 아주 저명한 몇 분이 서명을 했다가 취소하는 사태도 벌어졌다.한 저명한 언론인도 망설이다가 결국 서명을 못 하는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양측은 서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수차례 토론회를 열어야 했고 결국 5차례 절충 끝에 9일 밤이 돼서야 최종 합의안을 이끌어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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