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파별 이해 따라 ‘대통령 진의’ 해석 분분
개헌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이른바 ‘이심’(李心)의 실체를 놓고 여권 내 정파간 해석이 분분하다.지난 23일 당청 만찬회동에서 이 대통령이 개헌과 관련한 언급을 한 것으로 알려지자 각 정파는 일제히 나름의 분석을 내놓고 있다.이 대통령이 당시 회동에서 했다는 발언 역시 각 정파의 이해가 가미된 듯 전언자마다 조금씩 상이하다.
관심의 초점은 이 대통령이 개헌 추진에 실제로 힘을 실어주기로 했는지 여부다.
우선 청와대 참모진이 전하는 이 대통령의 의중은 ‘과거와 달라진 게 없다’는 것.
이번 회동에서도 ‘개헌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나 당과 국회에서 풀어야 할 문제’라는 평소의 철학을 원칙적으로 언급한 것일뿐 회동을 계기로 특별히 개헌론에 힘을 실어준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의 평소 개헌 철학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청와대 참모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변화된 시대상을 반영해 대한민국이 새로운 도약을 이루려면 낡은 헌법을 바꿔야 하고 △기왕 개헌을 하려면 권력구조만 손질하는 ‘땜질식 개헌’이 아닌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21세기에 맞게 고치는 ‘전면 개헌’을 하되 △개헌은 순수하게 국회에서 논의하고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이 같은 개헌관을 공개 석상에서 꾸준하게 설파해왔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당 지도부와의 만찬회동에서 ‘개헌은 당에서 알아서 할 문제인 만큼 청와대를 자꾸 끌어들이지 말라’는 취지로 말했다”면서 “대통령과 청와대는 개헌 불개입 원칙이 확고하고 당에서 토론해 입장을 정리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친이계의 핵심인 ‘이재오계’가 전하는 ‘이심(李心:이대통령의 의중)’은 청와대의 입장과는 조금 다른 뉘앙스다.
개헌론에 꾸준히 군불을 때온 이재오계는 이 대통령이 만찬 회동에서 개헌 필요성을 언급한 대목을 ‘원칙적 언급’이 아닌 ‘시의성’을 지닌 정치적 발언으로 해석하면서 개헌 공론화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고 나섰다.
이 대통령이 이른바 ‘원포인트 개헌’은 부적절하지만 전면 개헌에는 찬성한다는 뜻을 명확히 전달해줌으로써 이재오 특임장관이 주도해온 개헌 논의에 힘을 실어준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래서 회동 이후에 이 장관도 ‘선(先)권력구조 개편론’을 언제든 철회할 수 있다는 유연한 입장을 정했다는 후문이다.
이는 청와대가 전하는 ‘이심(李心)’과는 다른 기류여서 이 대통령의 진의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특히 청와대와 한나라당 일부에서는 이 대통령의 만찬 회동 발언은 이 장관의 ‘원포인트 개헌론’에 제동을 건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이중 플레이’를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실제로는 이 대통령이 친이계 핵심의 개헌 움직임에 힘을 실어주고 있지만 개헌 논의의 정치적 위험 부담 때문에 이 대통령과 청와대는 겉으로는 뒤로 빠져있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청와대 참모진과 이재오계간의 알력이 빚어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섣부른 추정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남은 임기에 4대강 사업을 비롯한 주요 국정과제를 완수할 생각에만 골몰한 채 개헌에 대해선 원론적 생각만 갖고 있는데 양측이 서로 아전인수격 해석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청와대 참모진이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과 가깝다고 주장하면서 이상득계와 이재오계의 충돌이 아니냐는 ‘음모론’을 제기하는 정치권 인사들도 없지 않다.
게다가 이재오계를 제외한 일부 친이계 인사들과 중도 성향 인사들은 청와대의 해석에 동조하고 있어 정치권의 ‘개헌 방정식’은 들여볼수록 복잡하게 얽히고 있다.
이처럼 이 대통령의 의중을 둘러싸고는 정파간 해석이 엇갈리지만 가장 중요한 개헌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정권 후반기로 치닫는 현 시점에서 한나라당의 차기 유력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를 위시한 박근혜계가 개헌 논의에 노골적으로 거부감을 표시하는데다 야당도 ‘시기상 개헌은 물건너갔다’는 반응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야당에서는 “현실성이 없는데도 여권 핵심부가 개헌을 추진하는 것은 개헌이 목적이 아니라 판을 흔들려는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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