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음서제’ 관행 왜 못 끊나
간부 자녀 채용 알려진 것만 6건큰 선거 없는 해 업무강도 낮은데
그나마 선거 해 급증하는 휴직률
승진 속도는 4~5년 빠른 ‘꿀직장’
“독립성 강조… 감사도 비정기적”자녀 특혜 채용 논란을 빚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박찬진 사무총장과 송봉섭 사무차장이 25일 ‘자진 사퇴’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관련 논란은 쉬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폐쇄적인 선관위의 구조를 근본부터 뜯어고치지 않는 한 관행처럼 되풀이돼 온 ‘선관위판 음서제도’는 사라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중앙선관위와 국민의힘 등에 따르면 지금까지 드러난 선관위 전현직 고위 간부 자녀의 경력직 채용은 모두 6건에 달한다. 사퇴한 박 사무총장과 송 사무차장의 자녀 외에도 2020년 김세환 전 사무총장, 2021년 신우용 제주 선관위 상임위원, 윤모 전 세종 선관위 상임위원, 경남지역 선관위에서 일하는 김모 과장의 자녀가 선관위에 경력 채용됐다.
2005년부터 농협장 선거 등 위탁 선거를 맡아 치르게 되면서 일반 업무가 늘어났지만 선관위는 공무원 사회에서 이른바 ‘꿀직장’으로 통한다. 큰 선거가 없는 해에는 업무 강도가 낮은 편으로 알려져 있고 승진 속도도 비교적 빠르기 때문이다.
인사혁신처 등에 따르면 선관위는 9급에서 7급 승진까지 걸리는 속도가 다른 부처 평균(9년 1개월)과 비교해 4~5년 이르다. 9급 출신이 차관급까지 오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조직이기도 하다. 실제 이명박 정부에선 9급 출신 사무차장이 배출되기도 했다.
큰 선거를 할 때만 되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휴직률도 ‘꿀직장’ 오명을 키웠다. 실제 지방선거와 20대 대선이 전후로 겹친 2021년 선관위 전체 정원 가운데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쓴 인원은 2021년 236명으로 총선만 있었던 2020년 147명과 비교해 약 60% 증가했다. 육아휴직만 떼놓고 보면 같은 기간 휴직자가 95% 증가했다.
이런 수치 덕에 취업, 공무원 커뮤니티 등에선 ‘대선 때 선관위서 출산런(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쓰는 일)을 못 하면 바보’라는 말이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선관위가 헌법기관이란 이유로 외부 감시와 견제를 상대적으로 피해 왔다고 지적한다. 실제 선관위는 자녀 특혜 채용 논란과 관련해 외부 감사를 받지 않고 ‘셀프 조사’로 이를 무마하려 했다. 여권과 여론의 뭇매가 쏟아지고 나서야 선관위는 지난 23일 5급 이상 자녀 채용 관련 전수조사를 받아들였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자녀 채용 의혹들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그동안 헌법기관이라는 이유로 독립성만 강조했지 이에 걸맞은 책임의식이 결여돼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면서 “감사원의 감사를 정기적으로 제대로 받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상병 정치 평론가도 “국회에서도 국정감사나 행정안전위원회 호출, 청문회 등을 통해 더 집중적으로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여권에서는 전수조사가 이뤄지면 유사 사례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노태악 선관위원장의 사퇴와 함께 선관위의 근본적인 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6급 이하 직원들을 전수조사해 본인의 부모가 선관위 전현직 출신인지를 알아보자는 주장도 나온다.
2023-05-26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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