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고문 경찰’ 발표 파장…어떤 수법 썼나

인권위 ‘고문 경찰’ 발표 파장…어떤 수법 썼나

입력 2010-06-16 00:00
업데이트 2010-06-1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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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자백을 받아내려 피의자를 고문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결과가 나옴에 따라 경찰이 여전히 ‘후진국형 수사관행’을 버리지 못했다는 의심을 받게 됐다.

 16일 인권위가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서울의 한 경찰서 강력팀에서 조사를 받고 구치소로 이송된 피의자 32명 가운데 22명이 경찰로부터 심한 고문과 구타를 당했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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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경찰이 고문’ 관련 5명 고발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16일 서울 무교동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가인권위 유남영 상임위원(오른쪽)과 정상영 조사관(왼쪽)이 경찰 조사중 고문을 당했다는 진정 관련 직권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날 국가인권위는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강력사건 피의자들이 조사를 받다가 고문을 당했다는 진정을 접수한 뒤 직권 조사한 결과 피의자들을 고문한 것으로 판단했다며, 관계된 5명의 경찰에 대해 고발조치 했다고 발표했다.
국가인권위,’경찰이 고문’ 관련 5명 고발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16일 서울 무교동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가인권위 유남영 상임위원(오른쪽)과 정상영 조사관(왼쪽)이 경찰 조사중 고문을 당했다는 진정 관련 직권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날 국가인권위는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강력사건 피의자들이 조사를 받다가 고문을 당했다는 진정을 접수한 뒤 직권 조사한 결과 피의자들을 고문한 것으로 판단했다며, 관계된 5명의 경찰에 대해 고발조치 했다고 발표했다.


 인권위는 이와 관련해 고문한 것으로 의심되는 경찰관 5명을 고발 및 수사의뢰했고,현재 검찰이 수사를 진행 중이어서 수사 결과에 따라 고문의 진위가 가려질 예정이다.

 현재 해당 경찰서는 인권위 발표 내용을 전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비슷한 내용의 고문 피해자가 22명에 달하고,이들의 진술이 매우 일관적이고 구체적이어서 검찰의 조사결과가 주목된다.

 ●인권위가 발표한 고문 실태

 인권위의 발표 내용을 보면 해당 팀이 자행한 고문 방법은 등 뒤로 수갑을 채운 양팔을 머리 쪽으로 꺾어 올리는 속칭 ‘날개꺾기’였다.

 3월26일 절도 혐의로 체포된 피의자는 “팀장이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 내 목을 끼우고는 수갑을 찬 손을 위로 당기면서 꺾었다.오른팔 관절이 부러지는 소리가 나자 잠시 멈추고 살펴보더니 ‘부러지지 않았다’며 계속했다”고 증언했다.

 앞서 3월9일 체포된 피의자도 “꺾인 팔과 숨 쉴 수 없는 고통으로 그만하라는 신호를 손으로 보내도 팀장이 ‘아직 멀었다’고 하면서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야 풀어주고는 자백을 하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고문으로 피의자가 자백한 혐의의 상당수는 허위였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인권위는 전했다.

 지난해 9월 체포된 이는 스타렉스 차량 안에서 고문을 받으며 자백을 강요당했고,경찰은 11건의 혐의를 송치했지만 검찰 조사에서 5건으로 축소됐다는 것.

 1월18일 체포된 다른 피의자는 “허위자백 후 현장검증을 나갔는데 범행 장소를 정확히 말하지 못한 채 차량이 빙빙 돌자 팀장이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라며 차 안에서 다시 고문을 했다”고 주장했다.

 2월26일 절도 혐의로 체포된 한 피해자는 “고통에 못이겨 비명을 지르자 몇분 후 양복을 입은 사람이 들어왔고 가해자들이 모두 일어나 경례를 했다”며 “‘무슨 일이냐’는 물음에 가해자들이 ‘별일 아니다’라고 답하자 ‘살살하라’라고 말한 뒤 돌아갔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들 피의자는 고문 과정에서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고 이후에도 극심한 후유증을 겪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인권위는 전했다.

 한 피해자는 “한달간 팔을 펴면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느낌과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돼 모든 생활이 불편했다”고 진술했고,다른 피해자는 “손목 신경이 마비돼 감각이 없고 어깨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고 말했다.

 ●‘고문 경찰’ 부활하나

 우리나라 경찰은 과거 독재시설 시국 사건과 관련해 심심찮게 고문과 가혹행위를 자행해 ‘정권의 시녀’ ‘고문 경찰’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제5공화국 시절 박종철 치사사건과 권인숙 성고문사건,김근태 고문사건 등 3대 사건은 특히 유명하며,이들 사건의 고문 경찰관은 대부분 실형을 선고받는 등 엄정한 법의 처벌을 받았다.

 1990년대 들어 경찰의 고문 행위는 시국사건을 벗어나 일반 사건 피의자를 상대로도 가끔 터져나오기는 했지만 눈에 띄게 줄었고,2000년대 들어서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경찰이나 검찰 등 수사기관뿐 아니라 정권 차원에서 경찰서 조사실 내에 CCTV를 설치하는 등 피의자 인권보호를 위해 노력한 결과였다.

 이 때문에 이번에 나온 인권위의 조사결과는 사실 여부를 떠나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다.사실이라면 십수 년 전에나 일어났을 법한 일이 최근에 서울 시내 한복판 경찰서에서 벌어진 셈이기 때문이다.

 또 해당 경찰관들이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 조사실 내 CCTV 사각지대나 차량 안에서 고문을 자행했다는 피의자들의 진술은 사실로 밝혀질 경우 그동안의 인권보호를 위한 장치나 제도가 마음만 먹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점을 입증하게 된다.

 고문 행위가 자행됐다면 이는 지나친 성과주의의 폐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해당 경찰서의 담당 구역이 서울 시내에서도 사건이 적고 비교적 조용하고 차분한 치안 분위기가 조성돼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고문으로 허위 자백을 이끌어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경찰관은 “한 경찰서내 특정 팀이 그런 행위를 했다면 그 팀에서 꾸준히 내려온 수사 방식일 개연성이 있다”고 추측했다.

 인권단체는 이번 고문 사건뿐만 아니라 불심검문 등 경찰의 무리한 수사관행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정부가 인권을 지속적으로 강조하지 않으면 실적을 내려는 욕구에 사로잡혀 있는 경찰 등 수사기관은 고문이나 가혹행위의 유혹을 받기 마련”이라며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통제돼야 하는데 현재 통제가 허술해진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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