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룸살롱 살인사건’ 주범 눈물의 결혼식

‘서진룸살롱 살인사건’ 주범 눈물의 결혼식

입력 2010-11-11 00:00
업데이트 2010-11-11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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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진씨 ‘20년 옥바라지’ 동료 누나와 사랑 결실

이보다 더 극적이고, 가슴 벅찰 수 있을까. 죽는 순간까지 잊지 못할 날, 그는 이날을 그렇게 기리고 싶다고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섬 소년에서 꿈 많은 대학생, 조직폭력배라는 오명과 살인 그리고 사형수…. 고된 인생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지그시 감은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하얀 면사포를 쓴 신부가, 박수로 그를 맞는 하객들이, 그리고 만감에 울음을 삼키는 노모까지 모두 눈물에 번져 아른거렸다. 꿈 같았다. 52세의 새 신랑은 그렇게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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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3시 서울 흑석동 성당. 키 175㎝가량의 건장한 체격이 무색하게 주인공 박영진(왼쪽·52)씨는 신부보다 더 떨고 있었다. 그는 “내게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소원이 이뤄진 날”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신부는 동료 조직원의 누나였던 장우순(53)씨. 박씨와 함께 서진룸살롱 사건에 가담한 동생의 옥바라지를 위해 교도소를 오가던 장씨는 어느새 박씨에게도 늘 기다려지는 존재가 됐다. 처음 사형선고를 받은 뒤 그는 가톨릭 신자가 됐다. 그를 종교로 이끈 이가 장씨였다. 처음엔 멀리서만 그를 지켜봤다. 그러다 수감 10년이 넘으면서 그의 가슴에 알 수 없는 감정이 싹트는 걸 느꼈다. 이심전심이었던지 장씨도 그 무렵부터는 매달 찾아와 그를 위해 기도했다. 그것이 사랑임을 그제야 알았다고 박씨는 털어놨다. 기약 없는 수감생활에 발이 묶인 그가 품기에는 너무 큰 꿈이라고 여겼으나 모범수로 감형을 받으면서 둘은 희망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출소를 몇 년 앞둔 어느 봄날, “그립고 기다리는 마음이 커지는 이곳에서 당신만이 나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이라며 “운명적으로 만난 당신과 영원히 같이하고 싶다.”는 옥중 프러포즈를 전했다.

사실, 그에게 결혼은 상상조차 못할 일이었다. ‘세기의 사건’이라는 1986년의 ‘서진룸살롱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아 20년을 복역한 뒤 출소한 그에게 ‘서진룸살롱 사건’의 꼬리표는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녔다. 강남 역삼동의 한 룸살롱에서 발생한 그 사건은 당시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건장한 20대 청년들이 술을 마시다가 우발적으로 충돌, 급기야 회칼 등을 들고 다른 무리와 집단 난투극을 벌여 4명을 살해한 80년대 대표적 사건. 박씨를 비롯한 관련자 12명은 살인 등의 혐의로 모두 구속됐다.

2006년 겨울, 죗값을 치르고 사회에 나왔지만 세상은 여전히 싸늘했다. 당장 생활고에 내몰렸다. 취직도 어려웠다. 그런 그가 ‘과거’에 매몰되지 않도록 버팀목이 돼 준 이가 바로 지금의 아내와 종교였다. 미혼모였던 아내의 20대 아들도 둘 사이에서 충실한 가교 역할을 하며 힘을 북돋았다. 안경점을 하는 그 아들이 지난해 첫 아이를 낳아 박씨는 결혼도 하기 전에 벌써 ‘할아버지’가 됐다. 그는 “아들이 대견스럽고 고맙다.”며 감사의 뜻을 비쳤다.

출소 후 건설회사를 하는 선배의 도움으로 운전을 하며 새 출발을 준비했던 그는 어렵사리 서울 대치동에 작은 셋집도 마련했다. 지금은 제조업체에서 일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지만 성당 봉사활동에는 빠짐없이 참여하는 모범 시민이다.

그의 늦은 결혼식에는 내로라하는 ‘왕년의 어깨’들이 운집하는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결혼식이 열린 성당 앞마당은 물론 인근 유치원과 진입로가 검은 승용차로 채워졌고, 성당 안팎에는 1000여명에 이르는 검은 양복의 ‘어깨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그러나 긴 혼인미사가 시작되자 잡음 하나 없었다. 오후 3시 30분. 혼인미사를 집전한 신부가 박씨의 편지를 읽자 장내는 일순 숙연해졌다. 신부에게 전하는 박씨의 마음이었다. “만나지 못할 때 가슴이 저리는 그리움이 생겼고, 그 그리움이 사랑의 결실이 되기를 기도했고, 그리고 그 기도가 오늘 결혼으로 이어졌습니다. (중략) 하느님을 꼭 기억하는 신앙인의 자세를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예식을 마치고 행진을 하는 박씨가 그제야 미소를 띠었다. 그는 줄곧 고맙다며 하객과 가족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온 한 남자의 늦었지만 뜻깊은 새 출발, 넓은 성당을 ‘어깨들의 박수’가 가득 채웠다.

글 백민경· 사진 이호정기자 white@seoul.co.kr
2010-11-11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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