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주면 싸우고 싶은 심정 죽어서야 나갈 우리 고향”

“총 주면 싸우고 싶은 심정 죽어서야 나갈 우리 고향”

입력 2010-12-23 00:00
업데이트 2010-12-23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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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취재를 마치며…

코끝이 찡했다. 포연이 쓸고 간 연평도의 마을에는 매캐하게 번지는 연기 속에 발이 묶인 그날의 순간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주인 없이 버려진 노부부의 점심상에는 당시의 놀라고 다급한 상황이 마치 그릇에 담긴 반찬들처럼 식은 채 놓여 있었다. 맛국물을 채 붓지 않은 삶은 소면은 고명조차 흐트러지지 않은 채 그릇 안에 살포시 담겨 있었고, 김치 등속 찬들은 그새 말라붙어 있었다. 폭격의 충격으로 창문만 깨지지 않았다면 곧 식사가 시작될 것만 같다. 정진섭(87)·최경희(81)씨 부부의 거실에는 이렇게 시간이 멈춰 있었다.

●버려진 점심상 당시 위급함 증언

지난달 25일 오후 3시 연평도. 포격이 있고 이틀이 지난 뒤였지만 곳곳에 ‘23일의 충격’이 남아 있었다. 북한군의 포격을 맞은 연평도는 주택 수십 채가 불타 황량한 전쟁터였지만 애착과 희망이 교차하는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연평초등학교 안에 있는 어린이집도 마찬가지였다. 종이꽃을 붙여 날짜를 확인하는 달력에는 23일 다음 날부터 빈 칸으로 남아 있었다. 24일, 25일…, 한칸 한칸 시선을 옮기다 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생트집이야. 우리 바다에서 우리가 훈련한다는데 왜 남들이 하고, 말고를 결정하겠다는 거야.” 지난 18일 정창권(56)씨는 저녁식사를 하면서 TV를 보다가 분통을 터트렸다. 마침 TV에서는 러시아가 유엔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해 우리 군의 사격훈련실시 여부를 논의한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다. 정씨는 “주민들도 대피소 들어가면 되니까 훈련하라고 하는데 왜 자기들이 나서냐.”면서 “사격훈련을 해도 북한이 꼼짝 못한다는 게 증명돼야 주민들도 안심하고 돌아올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은 얼핏 덤덤해 보였다. 그러나 말을 붙여 보면 속이 들끓고 있음을 이내 알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아예 독기를 품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북한군의 포탄이 쏟아져 무간지옥의 혼란과 불안을 겪은 탓일까. ‘전쟁. 할 테면 하자.’는, 어쩌면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 말들이 거침없이 터져 나왔다. ‘연평도의 진짜배기 주인’으로 살아가는 주민들은 그렇게 불안과 공포를 견뎌내고 있었다.

●“전쟁, 할 테면 하자” 분노의 소리

포격을 당한 지 한달 만인 21일, 모처럼 굴을 캐러 갯가로 나갔던 주민 이기옥(49·여)씨는 “북한이 원하는 게 주민들 다 떠나고 연평도가 빈 섬이 되는 것인데, 우리가 그런 의도에 따른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내 가족이 사는 고향을 내가 지키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 총을 준다면 들고 싸우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북한 포격에 납득할 만한 대응조차 못해 국민들을 답답하게 하고, 강대국 눈치 보느라 떳떳하게 주권 행사도 못한 군과 정부의 태도를 이들이 마뜩잖게 여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우리가 인정을 하든 않든 북한의 의도대로 연평도 및 서해 5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어 버린 우리 정부의 미적거리는 모습이 안타깝다는 그들이었다.

왜 그렇게 연평도에 연연하느냐고 묻자 그들은 무슨 소리냐는 듯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서 태어나 여기에서 뼈가 굵은 사람은 그런 말 못 한다. 연평도는 죽어서야 나갈 우리 고향이다.”

연평도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2010-12-23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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