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미호 선장 “해적에 수면제 먹이고 도망치려 했다”

금미호 선장 “해적에 수면제 먹이고 도망치려 했다”

입력 2011-02-16 00:00
수정 2011-02-16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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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됐다가 4개월만에 풀려난 금미305호의 김대근(54) 선장은 피랍 초기 해적들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탈출하는 방안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16일 연합뉴스가 단독 입수한 김 선장의 일기에는 124일간의 피랍 기간 피눈물나는 인질 생활과 해적질에 강제로 동원됐던 일, 각국 군함들이 여러 차례 접근했지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채 돌아간 사례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김 선장은 피랍 초기 생수 5병에 대게(crab) 마취용 수면제 100정씩을 섞은 뒤 해적들이 물을 찾을 때 주도록 주방장에게 지시했지만, 케냐 주방장은 해적들이 조를 나눠 식사하기 때문에 들킬 가능성이 많다며 극구 만류했다.

 또 해적들은 금미호가 영세어선인 점을 고려할 때 몸값을 받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해적질에 강제로 동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적들은 추가 해적질에 성공할 경우 금미호를 풀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2차례나 해적질에 성공하고도 약속을 어겼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금미호를 이용해 해적질에 성공했을 땐 염소 1마리, 생수와 콜라, 빵 등을 선원들에게 선물로 주는가 하면 억류기간이 길어지자 선장에게 당뇨약을 전달하고 낚시한 참치를 나눠 먹는 등 경계를 점차 풀기도 했다.

 해적들은 행동대장, 소말리아어와 영어에 능통한 통역요원, 전투대원 등으로 구성돼 해적질에 나설 때마다 프로 조직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지만 선측 높이가 큰 유조선 등 대형선박을 납치하려다가 실패해 ‘물에 젖은 생쥐 꼴‘을 면치 못한 적도 많다고 김 선장은 기록했다.

 그래도 해적들은 유럽연합(EU) 함대 소속 군함들이 가끔 접근해 정선 명령을 해도 인질을 잡고 있는 이상 자신들을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 여유로운 표정이었으며, 실제로 각국 해군은 접근만 했다가 별다른 위협을 주지 못한 채 사라졌다고 김 선장은 전했다.

 김 선장은 비슷한 시기에 납치됐던 다른 국적 선박들이 협상금을 내고 풀려날 때 부러움과 상실감을 느꼈다며 정부와 언론에 대한 강한 불만을 일기에 적기도 했다.

 김 선장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해적들의 감시를 피해 일기를 썼고 총 7권, 350쪽 분량의 일기의 시작 부분에는 거의 매일 ‘사랑하는 당신에게’라는 글귀를 써 아내에 대한 애틋한 감정도 드러냈다.

 김 선장은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해적에게 총을 맞아 죽더라도 유서 한 장 남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일기를 쓰게 됐다”며 “집사람한테 사랑한다는 말도 한번 못했는데 글로나마 죽기 전에 그런 심정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금미호는 지난해 10월 9일 케냐 라무지역 앞 18km 해상에서 해적에 납치된 뒤 4개월만인 지난 9일 풀려나 15일 케냐 몸바사항에 귀항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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