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 러플린 총장도 개혁 추진중 반발직면 하차
KAIST 서남표 총장에 대한 ‘퇴진’ 요구가 학내외에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중도 퇴임한 로버트 러플린(Robert B. Laughlin) 직전 총장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12일 KAIST에 따르면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양자에서 나타나는 현상인 ‘분수 양자 홀 효과’(Fractional Quantum Hall effect)를 이론적으로 처음 설명한 공로로 1998년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러플린 총장은 2004년 KAIST 최초의 외국인 총장으로 취임했다.
’노벨상 수상자’라는 명성과 함께 화려하게 취임한 러플린 총장은 ‘한국 과학기술계의 히딩크’로 불리며 ‘사립화’와 ‘종합대학화’ 등의 정책으로 KAIST를 미국의 명문 사립대학인 MIT처럼 만들겠다며 급진적인 개혁안을 내놓았다.
러플린 총장은 예술과 음악 등 교양과목 확대와 법학.의학부 준비과정 도입, 정부의존도 축소를 위한 수업료 신설, 영어수업 확대, 성과급제 도입 등의 ‘러플린 구상’을 통해 KAIST의 MIT화를 꾀했으나 교수들과 불화를 거듭, 결국 임기 4년의 절반만 채운 채 2006년 7월 중도하차했다.
당시 교수협은 전체 교수의 89%가 러플린 총장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한 데 이어 KAIST 총동창회도 사실상 퇴진을 종용하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학장 3명이 러플린 사퇴를 요구하며 보직을 사퇴한 데 이어 학과장 20명 전원이 사퇴서를 제출하는 등 러플린 총장에 대한 퇴진을 압박했었다.
결국, KAIST 이사회는 “러플린 총장은 KAIST의 세계화 등에 일부 업적이 있었으나 사회, 문화적 차이와 의사소통 부족에 따른 불협화음이 있어 계약이 계속되더라도 책무를 충실히 수행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다”며 중도하차 결정을 통보했다.
이후 러플린 총장은 퇴임을 앞둔 시점에서 KAIST가 MIT를 따라잡기 위해 보완할 점으로 ‘이중언어 캠퍼스’ 실현을 제안하며 “KAIST 학생이 MIT로 과학기술이 아니라 영어를 배우러 가는 것이 현실이다. 유학을 보내는 대신 학교에서 영어사용을 생활화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러플린 총장의 후임으로 2006년 7월 취임한 서남표 총장은 교수와 학생 사회에 일대 개혁의 회오리를 몰고 왔다.
러플린 총장처럼 MIT를 KAIST의 모델로 방향을 잡은 서 총장은 ‘10년내 MIT 따라잡기’를 위해 ‘철밥통’ 정년을 보장했던 교수들의 테뉴어(영년제 교수) 제도를 손봤고, 전액 면제되던 학생들의 학비 제도를 뜯어고쳐 ‘징벌적 수업료’ 제도를 마련했으며, 모든 과목을 100% 영어로 강의하도록 조치했다.
서 총장의 수업료 신설과 전과목 영어 강의 정책은 러플린 총장의 정책의 연장선에서 추진됐다.
서 총장은 2007년 일부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는 “공부하기 싫으면 나가라, 공부하기 싫은 사람은 KAIST에 올 필요가 없다”는 말까지 하며 학생들을 무한 경쟁으로 내몰기도 했다.
일련의 개혁으로 KAIST는 영국 ‘더 타임스(The Times)’와 대학평가기관 QS가 2009년 10월 발표한 세계대학평가에서 공학.IT 분야 세계 21위라는 국내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개혁 피로감에 따른 학생 4명의 잇따른 자살로 서 총장의 개혁은 빛이 바랬고, 교수협과 학생회는 개혁정책의 폐기 등을 요구하며 간접적으로 서 총장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 11일 오후 1시부터 2시간 가까이 열린 교수협 비상총회에서는 참석교수 200여명 가운데 64명이 서 총장의 용퇴 요구에 찬성표를 던졌으며, 학부총학생회도 대학본부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서 총장의 개혁을 ‘실패한 개혁’으로 규정하며 ‘무한경쟁’ 정책의 철폐를 요구했다.
서 총장과 비슷한 고강도의 개혁정책을 추진하다가 내부 구성원과 여론의 뭇매로 퇴진 수순을 밟았던 러플린 총장의 행보가 최근 KAIST 상황과 관련한 서 총장의 입지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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