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장 내용을 수사결과로 착각해 시 학교폭력위원회서 재심요청
대전지역 한 초등학교에서 1학년생들을 학교폭력범으로 판정한 데에는 행정당국의 착오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행정당국은 피해자의 일방적인 주장을 사실로 오해해 학교 측에 학교폭력 사건을 재심의하라고 지시했다.21일 대전시 학교폭력대책 지역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 대전 A 초등학교 1학년 B(7) 군의 부모로부터 자신의 자녀가 학교폭력을 당한 사건을 재조사해달라는 요청을 접수했다.
지난 4월 18-19일 학교 운동장에서 급우 6명이 자신의 자녀로 하여금 축구 골대에 강제로 손을 집어넣게 하고 매달았으며, 화장실에 열을 셀 동안 갇혀 있는 등 여러 차례 폭력을 당했다는 것.
신고를 접수한 A 학교 학교폭력 자치위원회는 운동장에서 촬영된 CC(폐쇄회로) TV 화면에 찍인 내용으로는 단순한 아이들간 장난인지, 학교폭력인지 판독이 어렵다며 ‘학교폭력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불복한 B군의 부모는 상급기관인 시 지역위에 재심을 요청하는 한편, 대전 서부경찰서에도 관련 사건을 신고했다.
시 지역위는 경찰의 의견을 들어보고 난 뒤 재심 여부를 결정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문제는 경찰의 공문이 내려온 뒤 발생했다.
공문에 ‘범죄사실’이라는 항목으로 가해와 피해 사실이 기록돼 있는 것을 시 지역위가 경찰의 수사결과라고 오해, 재심을 지시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피해 학생 부모의 고소장 내용일 뿐, 수사결과는 아니라고 경찰은 설명했다.
시 지역위 관계자는 “경찰에서 보낸 공문을 최종 수사결과로 봤는데, 경찰이 단순히 피해자의 의견을 공문에 적은 것 뿐이었다는 사실을 재심 판정 이후에 알게 됐다”라면서 “가해 학생의 부모에게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결국 학교폭력 자치위원회는 지시에 따라 재심을 열어 해당 학생들을 학교폭력범으로 판정했으며, 생활기록부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ㆍ나이스)에 졸업 후 5년 동안 관련 기록이 남게 됐다.
가해학생의 한 부모는 “처음 1심에서는 학교에서도 이 같은 일로는 아무 일도 없고 생활기록부에도 기재되지 않으니 염려 마시라고 하더니, 지역위의 재심 결정이 내려온 다음에는 자신들도 황당하고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고 했다”면서 “상급기관인 시의 지시에 부담을 느껴 폭력범 판정을 내린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 같은 어이없는 행정착오가 빚어진 것은 최근 학교 폭력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면서 전문성 없이 졸속으로 대책을 추진한 데도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다.
시 지역위의 경우, 지난 6월 1일부터 공무원, 경찰, 교수 등 11명의 위원이 관내 모든 초·중·고의 학교폭력 사건에 대한 재심을 맡고 있다.
가해 학생의 한 부모는 “감금과 폭행이라는 단어의 뜻도 모르는 여섯 살짜리 아이가 행정당국의 잘못된 판단으로 졸지에 학교폭력범이라는 낙인이 찍혔다”면서 “이번 결정의 부당함을 알리려고 행정 소송도 불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대전 A 초등학교에서는 교내 학교폭력 자치위원회가 양측의 의견을 들어야 함에도 피해 학부모의 진술만을 토대로 지난달 20일 심의를 열어 1학년 학생 4명을 학교폭력범으로 판정했다.
연합뉴스